[앞부분의 줄거리] ‘나’는 너우네 아저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전쟁 때 자식 대신 성표를 데리고 피난했던 너우네 아저씨를 떠올린다. 밤새도록 반짝반짝 닦은 크고 작은 자물쇠를 앞뒤로 주렁주렁 달고 장군처럼 거만하고 당당하게 장사를 나가는 너우네 아저씨의 권위는 완벽했다. 내 자식을 사지에 뿌리치고 조카자식을 구해 내서 공부시킨다는 게 그렇게 위대한 일일까? 나는 그의 당당함에 압도된 채, 속으론 ‘언제고 그의 위 대성이 터무니없는 가짜라는 걸 보고 말 테다’라는 엉큼한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휴전이 되었지만 우린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38 이남이었기 때문에 꼭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우리는 하필 우리 고향 쪽에서 남으로 쳐진 휴전선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너우네 아저씨인들 그때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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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거나 몸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과정은 모두 화학 반응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화학 반응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이 촉매이다. 촉매는 정촉매와 부촉매로 구분되는데, 활성화 에너지와 반응 속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활성화 에너지란 어떤 물질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이다. 활성화 에너지가 낮아지면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활성화 에너지가 높아지면 반응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이러한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것이 정촉매이고, 활성화 에너지를 높이는 것이 부촉매이다. 우리 몸속에도 이러한 촉매가 존재하는데, 효소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효소는 생체 내에서 화학 반응을 빠르고 쉽게 일어나게 한다. 예를 들어 소화 효소인 펩신이 분비되어..
적멸사(寂滅寺)에는 청허(淸虛)라 하는 한 이름 높은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어질었고 마음 또한 착했다.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땅 주어 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이라거나 ‘어두 운 밤의 태양’이라거나 하고 우러러 받들었다. 그런데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胡狄)이 침입하여 팔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冤魂)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 강도(江都)의 참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신의 피는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이 산더미 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 지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청허 선사만이 이를 슬..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
근대 철학은 근대 과학의 양적인 크기를 중시하는 사고를 수용하며 발달했다. 고대 과학이 사물 변화의 질적인 부분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근대 과학은 갈릴레오의 “자연이라는 책을 펴 보라. 거기에는 수(數)라는 글자로 가득 차 있다.”라는 발언에 나타나듯 양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즉 양화할 수 있는 것을 과학으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대 과학은 미리 수학적으로 설정한 믿음을 통해 자연에 접근하였다. 일례로 케플러는 우주가 기하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믿음에 따라, 이에 맞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연 세계에 대하여 기하학과 같은 수학적 관점의 선험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근대 철학의 이성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수학에 심취했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선..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
[앞부분의 줄거리] 눈 덮인 밤길을 억구와 큰 키의 사내(형사)가 동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억구가 6·25 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득칠을 우연히 만나 술자리 끝에 그를 살해하고, 부친의 산소 곁에서 죽을 심산으로 고향으로 가는 길임이 드러난다. 옆 산 소나무 위에 얹혔던 눈무더기가 쏴르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자기 무게를 그렇게 나약한 소나뭇가지 위에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듯이……. 그때 좀 먼 곳에서 뚝 우지끈 소나 뭇가지 부러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이때 억구가 느닷없이 키 큰 사내의 앞을 막아 서며, “선생, 난 득수 동생놈을, 그 김득칠일 어제 죽였단 말이오. 이렇게 온통 눈이 내리는데 그까짓 걸 숨겨 뭘 하겠소. 선생은 아주 추악한, 사람을 몇씩이나 죽인 무서운 놈과 함..
(가)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 계랑 (나)동풍(東風)이 건듯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적막한데 그윽한 향기는 무슨 일인가 황혼의 달이 쫓아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흐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구나 임이 너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까 꽃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綠陰)이 깔렸는데 ㉠ 비단 휘장 안은 쓸쓸하고 수놓은 장막은 텅 비어 있다연꽃을 수놓은 휘장을 걷고 공작이 그려진 병풍을 두르니 가뜩이나 시름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도 길던가 ㉡ 원앙이 그려진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장에서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규직 근로자에서부터 단 시간 근로자 즉 아르바이트까지 근로자에 포함된다. 그런데 단 시간 근로자의 경우 법적으로는 엄연한 근로자이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법적인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가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에는 근로 조건을 ㉠ 명시(明示)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로 계약이란 근로자가 근로 조건에 대해서 사업주와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약속은 구두로 하기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반드시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근로 계약서에는 일을 하기로 한 기간, 일할 장소, 해야 할 일, 하루에 일해야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쉬는 날, 임금과 임금을 받는 날 등 중요한 내용..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정노동 종사자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특정한 감정 표현을 요구받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감정노동은 업무 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 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 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을 일컫는다. 감정노동 종사자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크게 개인 특성, 직무 특성, 조직 특성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 특성을 대표하는 요인으로는 공감적 배려가 있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공감적 배려가 강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실제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직무 특성을 대표하는 요인으로는 직무 다양성이 있다. 이것은 직무 수행 과정에..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함께 출제된 지문 우리는 시를 통해 삶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특정 시대나 사회, 혹은 특정 계층을 대표할 만한 인 물들이 있는데, 이런 인물을 ‘전형적 인물’이라고 한다. 시 속 전형적 인물은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어떤 시에서는 화자 자신이 전형적 인물이 되기도 하고, 또..
(띄어쓰기 교정이 되지 않은 지문입니다.) 정조 임금이 애초 10년을 잡았던 수원 화성의 ⓐ 공사를 2년 7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약용이 발명한 ‘유형거(游衡車)’라는 특별한 수레 덕분이었다.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성을 쌓는 돌을 운반할 때 유형거를 이용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수레에 비해 유형거가 공학적으로 높은 평 가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여느 수레는 짐을 나르는 ⓑ 기능에만 치우쳐 있는 것에 비해, 유형거는 짐을 쉽게 운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짐을 싣는 작업도 지렛대의 원리를 반 영하여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유형거는 무게를 견디고 분산시키는 바퀴와 복토, 짐을 싣는 곳인 ..
집에 옷과 밥을 두고 들먹은 저 고공아 우리 집 내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며 이르리라 처음의 할아버지 살림살이하려 할 때 어진 마음 많이 쓰니 사람이 절로 모여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 집을 지어내고 [A] 써레, 보습, 쟁기, 소로 전답을 경작하니 올벼논 텃밭이 여드레갈이로다 자손에게 물려줘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도 근검터라 저희마다 농사지어 가멸게 살던 것을 요사이 머슴들은 철이 어찌 아주 없어 밥사발 큰지 작은지 옷이 좋은지 궂은지에만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를 시기하는 듯 무슨 일 생각 들어 흘깃흘깃하느냐 너희네 일 아니하고 시절조차 사나워 가뜩이나 내 세간이 졸아들게 되었는데 엊그제 날강도에 가산을 탕진하니 집 하나 불타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다 크나큰 ..
이웃에 있는 장생이란 사람이 집을 지으려고 하여 산에 들어가 재목을 찾았으나, 빽빽이 심어진 나무들은 대부분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꼭대기에 한 그루가 있었는데,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좌우에서 보아도 역시 곧기만 했다. 때문에 쓸 만한 좋은 재목으로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 뒤에서 살펴보니, 구부러져 있는 나무였다. 이에 장생은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했다. “아, 나무 가운데 재목이 될 만한 것은 보면 쉽게 살필 수 있고, 고르면 쉽게 가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살폈어도 쓸모없는 재목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구나. 그러니 하물며 사람들이 외모를 그럴 듯하게 꾸미고 속마음을 깊게 숨기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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