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나희덕, 「못 위의 잠」


Photo by Mark Boss on Unsplash





함께 출제된 지문


우리는 시를 통해 삶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특정 시대나 사회, 혹은 특정 계층을 대표할 만한 인 물들이 있는데, 이런 인물을 ‘전형적 인물’이라고 한다. 시 속 전형적 인물은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어떤 시에서는 화자 자신이 전형적 인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시에서는 화자가 관찰한 대상이 전형적 인물이 되기도 한다. 전자는 화자가 체험한 현실을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전달할 수 있고, 후자는 시적 대상이 처한 현실과 그의 정서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시는 전형적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상황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의 상황을 보여 줄 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는 전형적 인물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