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수라(修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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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문항


24. 「수라(修羅)」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대상을 의인화하여 화자의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② 촉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대상이 놓인 비극성을 부각하고 있다. 

③ 현재형 어미를 사용하여 시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④ 화자의 태도가 달라짐에 따라 대상이 처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각주:1]

⑤ 1연 ➔ 2연 ➔ 3연에 따라 행의 수가 늘어나는 구조를 통해 정서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함께 출제된 지문 관련 문항의 선택지 내용[각주:2]


우리는 시를 감상하면서 시인이 시 속에 감추어 놓은 여러 장치들을 발견해 내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 장치 중 하나인 시적 공간은 시인이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설정한 곳으로 우리가 일상적 경험을 통해 지각하며 생활하게 되는 공간과는 성격이 다르다.


시적 공간은 시인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구성된다. 시인은 이러한 시적 공간을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동일한 공간도 한 편의 시에서 다른 의미를 담은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또한 시적 공간은 시인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독자가 주체적으로 체득한 공간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이처럼 시적 공간은 감상의 실마리가 되며 나아가 창조적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로 기능하기도 한다.[각주:3]


① 시인은 (가)의 1연에서 ‘문 밖’을 일상적 경험을 통해 지각하는 공간과는 다른, 가족 공동체가 해체된 공간으로 설정했겠군. 

② (가)의 3연의 ‘문 밖’은 1연의 ‘문 밖’과 동일한 공간이지만, 시인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1연의 ‘문 밖’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설정했겠군.


  1. 화자의 ‘거미’에 대한 태도는 처음에 무심함에서 차츰 서러움, 걱정, 슬픔을 느끼며 달라지고 있지만 대상이처한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 않다. 왜냐 하면 ‘거미’는 계속 ‘문 밖’으로 내보내지지만 ‘문 밖’은 재회의 가능성을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25번 문항. [본문으로]
  3. 함께 출제된 현대시: 송수권, 「까치밥」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