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 송수권, 「까치밥」


Photo by Mishu Vass on Unsplash





함께 출제된 지문  관련 문항의 선택지 내용[각주:1]


우리는 시를 감상하면서 시인이 시 속에 감추어 놓은 여러 장치들을 발견해 내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 장치 중 하나인 시적 공간은 시인이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설정한 곳으로 우리가 일상적 경험을 통해 지각하며 생활하게 되는 공간과는 성격이 다르다.


시적 공간은 시인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구성된다. 시인은 이러한 시적 공간을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하고, 동일한 공간도 한 편의 시에서 다른 의미를 담은 공간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또한 시적 공간은 시인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독자가 주체적으로 체득한 공간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이처럼 시적 공간은 감상의 실마리가 되며 나아가 창조적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로 기능하기도 한다.[각주:2]


③ 시인은 (나)의 ‘남도의 빈 겨울 하늘’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는 다른, 화자가 지키려는 가치관이 사라졌을 때를 가정한 공간으로 설정했겠군.

④ 독자는 (나)의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에서의 ‘길’을 일상에서 지각하는 ‘길’이 아닌, 시인의 고된 삶이 반영된 ‘길’로 이해할 수 있겠군.[각주:3]

⑤ 독자는 (나)의 ‘가야 할 머나먼 길’에서의 ‘길’을 일상에서 지각하며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길’이 아닌, 주체적으로 체득한 ‘길’로 이해할 수 있겠군.

  1. 25번 문항. [본문으로]
  2. 함께 출제된 현대시: 백석, 「수라」 [본문으로]
  3. 적절하지 않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