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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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문항들


21. (가) ~ (다)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각주:1]

① 직유법[각주:2]을 활용하여 대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② 점층적인 방식[각주:3]을 사용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③ 영탄적 표현[각주:4]을 통해 고조된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④ 명령형 어미를 반복하여 결연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⑤ 역설적 표현[각주:5]으로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2. <보기>를 바탕으로 (가)[각주:6]와 (나)[각주:7]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가)와 (나)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화자의 변모와 이에 대한 정서가 나타나 있다. (가)에서 화자는 과거와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단절감을 드러내는 반면, (나)에서는 성장하면서 넓은 세상에서 경험이 확장되었던 화자가 모성(母性)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유년 시절의 가치로 회귀하고자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선택지 생략)


  1. 정답은 ①번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시에 해당하는 설명을 찾아보았습니다. [본문으로]
  2. ‘칠흑 같은 어둠’ 등에서 확인된다. [본문으로]
  3. 유년 시절부터 자라면서 ‘대처’로 나오고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점층적인 방식으로 전개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본문으로]
  4. 알아두어야 할 문학 개념어. [본문으로]
  5.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좁아’졌다는 부분에서 확인된다. [본문으로]
  6. 김기림, 「추억」 [본문으로]
  7.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