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Photo by Arwan Sutanto on Unsplash





함께 출제된 지문


우리는 시를 통해 삶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특정 시대나 사회, 혹은 특정 계층을 대표할 만한 인 물들이 있는데, 이런 인물을 ‘전형적 인물’이라고 한다. 시 속 전형적 인물은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어떤 시에서는 화자 자신이 전형적 인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시에서는 화자가 관찰한 대상이 전형적 인물이 되기도 한다. 전자는 화자가 체험한 현실을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전달할 수 있고, 후자는 시적 대상이 처한 현실과 그의 정서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시는 전형적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상황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피폐해진 농촌의 상황을 보여 줄 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는 전형적 인물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