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날 뒤울안에서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눈물의 찌꺼기가 

비칠비칠 아직도 거기 

남아 빛나고 있다.


심청이네집 심청이 

빌어먹으러 나가고 

심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다시 눈 트고 있다, 다시 눈 트고 있다. 

장 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내 어린날 여름냇가에서 

손바닥 벌려 잡다 놓쳐버린 

벌거벗은 햇살의 그 반쪽이 

앞질러 달려와서 기다리며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 보이고 있다.


―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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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 문항의 <보기>와 선택지를 통한, 위 시에 대한 이해.


<보기>

이 시의 화자는 특정한 소리로 인해 떠올리게 된 장면에서,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이를 견뎌내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과거의 상처를 포용하게 된다. 2연을 기점으로 하여 1연과 3연에 나뉘어 제시된 장면에서는 기억 속 화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이러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① 1연의 ‘대숲바람 소리’는 ‘초록별들의 /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와 연결되면서 화자에게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유년 시절의 서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② 2연에서는 ‘심청이네집’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주던 그 햇살’이 화자에게도 ‘다시 눈 트고 있’는 것으로 언급되면서 서러운 기억을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③ 2연에서는 ‘다시 눈 트고 있다’와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 려오고 있다’가 대응되어 ‘햇살’과 ‘참대밭의 우레 소리’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읽어내게 한다.


⑤ 3연의 ‘대숲바람 소리’로 떠올리게 된 ‘햇살의 그 반쪽’은 ‘기다리며’ ‘반짝이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면서 화자가 기억 속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