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사(寂滅寺)에는 청허(淸虛)라 하는 한 이름 높은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어질었고 마음 또한 착했다.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땅 주어 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이라거나 ‘어두 운 밤의 태양’이라거나 하고 우러러 받들었다.


그런데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胡狄)이 침입하여 팔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冤魂)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 강도(江都)의 참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신의 피는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이 산더미 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 지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청허 선사만이 이를 슬프게 여겼다.


선사는 몸소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려고 했다. 그는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아 도술을 부렸다. 넓은 강물을 날아 건넜다. 강 건너 인가가 황폐하여 어디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다. 이에 선사는 연미정(燕尾亭) 남쪽 기슭에다 풀을 베어 움막을 엮었다. 그는 움막에서 침식하며 법사(法事)를 베풀었다.


어느 날이었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는 어렴풋이 한 꿈을 꾸었다. 티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물빛같이 푸르렀고, 음산한 밤공기가 주위를 휩쌌다. 이따금 찬바람이 엄습했고, 처량한 밤기운이 감돌아 심상치 않았다. 청허 선사는 손에 석장(錫杖)을 짚고 달밤을 소요(逍遙)하고 있었다. 밤중이 되어 바람에 소리가 들려오는데,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노래와 웃음소리, 울음소리는 다 부녀들의 것으로서 한곳에서 들려왔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고 가만가만 다가가 엿보았다. 그곳에 수많은 부녀자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쭈글쭈글했고 백발이 성성했다. 또 젊은 여인도 있었는데 삼단 같은 머리를 하고 황홀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데 있었는데, 비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청허 선사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좀 더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두어 발이 넘는 노끈으로 머리를 묶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한 자가 넘는 시퍼런 칼날이, 시뻘건 선지피가 엉긴 채 뼈에 박혀 있었다. 또 머리통이 박살났는가 하면, 물을 잔뜩 들이켜 배가 불룩한 사람도 숱했다. 이 끔찍스러운 참상은 두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었고, 날카로운 붓으로도 낱낱이 기록할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전란을 입어 그 참상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슬프외다. 하늘이 무심탄 말인가요. 아니면 요괴의 장난인가요. 구태여 그 이유를 다 따지고 든다면 바로 우리 낭군의 죄이겠지요. 태보(台輔)의 높은 지위며 체부(體副)의 중책을 진 사람이 공론(公論)을 무시한 소치입니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편벽되게도 강도의 중책을 제 자식에게 맡겼지요. 자식 놈은 중책을 잊고 밤낮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 마음껏 향락에 빠졌습니다. 장차 닥쳐올 외적의 침입을 까맣게 잊어 버렸으니 어찌 군무(軍務)에 힘쓸 일을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깊은 강, 높은 성, 험한 요새를 갖고도 이처럼 대사를 그르쳤으니, 죽어 마땅하지요. 슬프외다. 이 내 죽음이여! 나는 떳떳이 자결했다고 자부합니다. 다만 제 자식 놈이 살아 나라를 구하지 못했고 죽어 또한 큰 죄를 지었으니, 하늘에 더러워진 이름을 어떻게 다 씻어 버리겠어요. 쌓이고 쌓인 원한이 가슴 속속들이 박혀 한때라도 잊을 날이 없군요.”


(중략)


모든 부인들이 제각기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탄식하기도 했고,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으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글로는 그것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다. 다음 여자가 일어나 사람 속을 왔다 갔다 했다. 그녀는 두 눈동자가 샛별같이 유난히 빛나고 초승 달 같은 눈썹이며 삼단 같은 머리는 가히 선녀라 할만 했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며 속으로 생각했다.


‘직녀가 은하에서 내려왔나, 월궁에서 항아가 내려왔나, 만일 직녀라 한다면 견우 낭군을 이별한 뒤에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슬픔에 싸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한 월궁의 항아라면 긴긴 밤 독수공방에서 애타게 그리워한다고 홍안은 늙어 가고 백발이 성성할 터인데, 도무지 이 여자는 복사꽃 아롱진 뺨에 근심 어린 빛이 전혀 없으니 알지 못할 일이로다. 이 또한 괴이한 일이구나.’


이때 그 여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첩은 기생이라. 노래와 춤이 널리 이름났습니다. 뭇 사내들과 어울려 인생 환락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에게 귀한 것이 정절입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규중에 틀어박혀 오래도록 한 남편을 섬겨 다시는 두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난리가 일어나 꽃 같은 청춘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 밤 이 높은 회합에 제가 낀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합니다. 외람되게도 숭렬하신 여 러분들의 곁에 끼어 다행히도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절의의 높으심과 정렬(貞烈)의 아름다움은 하늘도 감동하고 사람마다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습니다. 몸은 비록 죽었지만 죽은 것은 아닙니다. 강도가 함락되고 남한성(南漢城)이 위태로워 상감마마의 욕되심과 국치(國恥)가 임박하였지만 충신절사(忠۟臣節士)는 만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부녀자들만의 정절이 늠름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죽음이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서러워하십니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의 여러 부인들이 일시에 통곡했다. 그 통곡 소리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고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선사는 혹시나 부인들이 알아차릴까 두려워 숲속에 숨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물러나오다 별안간 놀라 깨어 보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 작자 미상,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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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보기>

「강도몽유록」은 꿈속의 사건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전란의 책임이 무능한 위정자들에게 있다는 작가의 비판적 현실 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몽유자는 강화도가 함락될 때 죽어 간 혼령들의 규탄과 통곡을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을 전달한다. 특히, 여인의 입을 통해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사건의 감추어진 진상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