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옥경의 선관이 항상 제일봉에 와서 놀았는데 황제가 거동하시는 것을 보고 선관이 급히 올라가느라 옥저[각주:1]와 거문고를 버리고 가게 되었다.


이때 주봉이 그 옥저와 거문고를 보고 즉시 천자께 바치니, 천자께서 보시고 어루만지며 물으셨다.


“이것이 무엇이냐? 세상에는 없는 것이로구나.”

하시고, 조정 백관들을 불러 알아보도록 하시니 아무리 알고자 한들 옥경의 선관이 가졌던 보배라 어찌 알겠는가. 천자께서 주봉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길


“경(卿)은 아는가?” 

하시니 주봉이 엎드려 아뢰었다.


“옥저는 장량이 계명산에 올라 팔천 병사를 흩었던 옥저이고, 거문고는 선관이 팔선녀를 희롱하던 거문고이옵니다.”


천자께서 명령하시기를


“경(卿)들은 다 각각 불어 보라.”

하시니 백관들이 아무리 불려고 해도 입만 아플 뿐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주봉이 명령을 받자와 옥저는 입에 물고 거문고는 손에 들고 희롱하듯 연주하니 옥저 소리는 산천의 초목이 춤추는 듯하고 거문고 타는 소리는 온갖 짐승이 노래하는 듯하였다. 천자께서 주봉의 손을 잡으시고 못내 사랑하시며 여러 벼슬을 내리시며 주홍의 큰 글씨로 사명기(司命旗)[각주:2]를 써 주시고 환궁하셨다. 그 후로는 조정에서의 권세가 전국에서 진동하더라. 이때 조정 백관이 모여 의논하되


“주봉이 조정 권세를 자기 혼자 차지하였으니 우리는 무슨 벼슬을 하겠는가?” 

하며 주봉을 원망하였다. 이때 좌승상 하던 유정한이라 하는 놈이 한 묘책을 생각하고 황제께 나아가 아뢰기를


“해평 도사를 보낸 지 여러 해가 되었으나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들어보오니 해평 도사로 간 놈들이 일심으로 힘을 합쳐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작당하여 연습하고 군사 훈련을 한다고 하옵니다. 이들이 국가에 큰 환란을 일으킬까 하오니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옵소서.” 

하니 천자가 크게 근심하여 말하였다.


“짐도 괴이하다 여겼었는데, 과연 그런 듯싶구나.” 

하시고 명령하여 가로되


“문무 여러 신하들 중에 충성심이 높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가리어 보내도록 하라.” 

하셨다.


[중략 줄거리] 해평 도사로 가던 주봉은 수적 장취경에 의해 아내와 헤어져 떠돈다. 한편, 주봉의 아내는 아들 해선을 낳지만 어쩔 수 없이 해선과 헤어지게 되고, 해선은 장취경에 의해 길러진다. 과거를 보러 황성에 간 해선은 하룻밤 묵게 된 곳에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부인께서 소자를 보시고 그렇게 슬퍼하시니, 부인의 자제분은 어디를 가셨나 봅니다.”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내 아들 이름은 주봉이요, 일찍이 십사 세에 과거 급제하여 해평 도사로 간 지 십사 년이나 되었으나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으니 이런 답답하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니 해선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과거 볼 생각도 없어져 부인께 여쭙기를


“저 옥저와 거문고를 주시면 값을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했다. 해선이 사랑하는 마음을 보고 부인이 옥저와 거문고를 내주시니 해선이 받아 가지고 한번 불어 보았다. 부인이 그 부는 소리를 들으니 주봉과 같이 부는지라. 부인이 더욱 슬퍼하다가 주봉을 생각하고는 옥저와 거문고를 내어주며 말했다.


“죽은 자식을 생각하여 주는 것이니 부디 자주 들러 주시오.”


이때 해선이 부인께 하직하고 바로 해평으로 날아가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옥저와 거문고를 연주하니 그 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산천이 진동하더라. 이때 주봉은 빌어먹으며 이곳저곳 다니다 천만의외로 옥저와 거문고 연주하는 소리가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은은히 들리거늘 반가운 마음에 더듬더듬 찾아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한 소년이 연주를 하고 있는데 옥저도 낯이 익었고 거문고도 낯이 익었다. 마음에 기이한 생각이 들기를


‘분명히 나의 옥저와 거문고로다.’

하여 눈물을 흘리니 이를 본 해선이 물어보았다.


“걸인은 무슨 연고로 그렇게 슬퍼하는 것인가?” 

걸인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주 승상의 아들 주봉인데 어린 나이에 과거 급제하였더니 황제께서 벼슬을 많이 주시매 조정이 시기하여 나로 하여금 해평 도사로 보내도록 하였다. 그래서 해평 도사로 부임하러 가다가 바다에서 수적 장취경을 만나 하인 삼십여 명이 다 죽었다. 또 나를 물에 밀쳐 넣었는데 옥황상제께옵서 살려 주셔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빌어먹고 있는 것이다.”

하고 옥저와 거문고를 자꾸 쳐다보았다. 이를 본 해선이 묻기를


“이 옥저와 거문고를 네가 한번 불어보겠는가?” 

하며 옥저와 거문고를 주니 주봉이 받아서 옥저는 입에 물고, 거문고는 손으로 타니 그 소리의 맑고 아름다움이 해선보다 더 하더라. 이때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르되


“부자지간 아니면 형제지간이다.” 

하니 해선이 생각하기를


‘황성의 부인께서 말씀하신 주봉과 같구나. 주봉이 떠난 지 십사 년이고, 또 내 나이가 십사 세요, 사람들마다 내가 걸인과 같다 하니 실로 이상하구나.’

하였다.


― 작자 미상, 「주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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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문항들


43.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외양 묘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요약적 서술[각주:3]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③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여 주관적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각주:4]

④ 잦은 장면 전환을 통해 긴박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꿈과 현실을 교차하여 사건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45.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주봉전」은 주여득, 주봉, 주해선의 3대를 중심으로 한 ‘이산(離散)-시련-상봉(相逢)’의 서사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주봉전」은 신물(神物) 획득과 가족 찾기, 위기 극복과 정 등에서 우연이 반복되고 전기성(傳奇性)이 두드러지는 등 작품 전반에 걸쳐 비현실적 요소를 삽입하여 당시의 독자들로 하여금 큰 흥미를 갖게 하였다.


① 주봉이 걸인이 되어 해평을 떠도는 것은 인물이 겪는 ‘시련’ 으로 볼 수 있겠군.

② 죽을 위기에 처한 주봉을 옥황상제가 살려준 것은 ‘비현실적 요소’로 볼 수 있겠군.

③ 옥저와 거문고를 통해 주봉과 해선이 만나게 되므로 옥저와 거문고는 ‘상봉’의 매개물이라 할 수 있겠군.

④ 해선이 주봉의 어머니 집에 머물고, 연이어 주봉을 만나는 장면에서 ‘우연’이 반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군.

⑤ 해선이 부인을 만나 주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이후 과거를 치를 생각이 없어진 것에서 ‘전기성’을 확인할 수 있겠군.[각주:5]

  1. * 옥저 : 옥으로 만든 저. 관악기. [본문으로]
  2. * 사명기 : 군대를 지휘하는 데 쓰던 깃발. [본문으로]
  3. 주봉의 말을 통해 요약적 '제시'는 드러난다. '서술'은 서술자가 하는 거다. [본문으로]
  4. ‘아무리 알고자 한들 ~ 보배라 어찌 알겠는가.’, ‘그 소리의 맑고 아름다움이 해선보다 더 하더라.’ 등의 구절에서 확인된다. [본문으로]
  5. '전기성'이란 이런 뜻이 아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