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선은 바로 길을 떠나 먼저 해주로 들어가면서 여러 읍의 일을 차례차례 남모르게 염탐하였다. 한 주점에 들어가니 어떤 사람들이 술을 먹으면서 서로 걱정하면서 말하였다.


“해주는 운남도 도적 때문에 봉물이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구나. 그 놈들을 어찌 하여야 잡을 수 있겠느냐? 세상에 참혹 한 일도 있도다. 모년 모일에 강릉의 이 감사가 벼슬살이를 옮겨 갈 적에 그 놈들에게 재물을 탈취당하고 나는 간신히 살아왔노라. 그러니 그 놈들을 잡으면 만백성에게 적선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 급제한 사람이 운남도 도적의 아들이라 하니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도적놈의 자식이 급제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어사가 들으니 자신에 대한 말인지라, 이에 생각하기를, ‘운남도 도적이란 말은 내가 아직 듣지 못한 바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도다. 또 강릉 이 감사가 바람과 파도를 만나 배가 뒤집혔다고 하였는데, 저 아전의 말을 들으니 분명한 사실이도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옥퉁소는 진정 이 감사의 퉁소요, 그때 탈취한 것이로구나.’하고, 그들에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때 이 감사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그 아전이 말하였다.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모시고 있던 하인들 가운데서도 살아온 사람이 몇 아니 됩니다.”


어사가 듣기를 마치고 마음속에 감추어두고는 운남도 도적을 탐문하여 알아내고자 배를 타고 몰래 들어갔다.


마침 어떤 집 마당에 큰 횃불을 놓고 여럿이 모여 앉아 분주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사가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자세히 들으니 도적들이 훔친 물건을 자랑하면서 점고(點考)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자네 아들이 이번에 급제하였다는 소문은 있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어찌 도문(到門)[각주:1]하지 아니하는고?” 


그 도적이 대답하였다.


“이제 자네는 모르겠는가? 세상에 남의 자식이란 것은 다 거짓 것이라네. 어떤 일 때문에 백학산 동구를 지나갈 때 서역국 집 앞에 어떤 아이가 놀고 있었다네. 염탐하여 알아보니 역국의 수양자라 하더군. 살펴보니 거동이 비범하기에 데려다가 내 자식처럼 길렀으니 저인들 어찌 아비가 다른 줄 알리오? 그러나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 오지 아니하는고? 아마도 남의 자식은 거짓 것인 듯하니 오지 않은들 어찌 하겠는가?” 


또 한 도적이 여천추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그러하거니와 만일 오지 아니하면 자네 딸은 어이할꼬?” 


이에 여천추가 말하였다.


“자네는 그런 말 하지 마소. 과거에 급제하여 유가(游街)하다 보면 자연히 더딘 것이라. 부모와 아내를 두고 어찌 오지 않겠는가. 만일 오지 않더라도 우리 무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내 딸은 다른 가문에 다시 시집가면 그만이로다. 그러나 가장 분한 것은 황해도 감사의 짐을 빼앗았을 때에 얻은 강릉 추월이라는 옥퉁소로다. 그것이 기이한 보배이기로 깊숙이 감추어두었다가 사위라 여겨 주었더니 이제 잃고 말았도다.” 


어사가 그 말을 다 듣고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간과 심장이 떨리면서 견디지 못할 듯하였으나 모든 일을 어찌 급하게 처리할 수 있으리오. 먼저 백학산을 찾아 가서 서역국에게 자초지 종을 물어 보리라 하고 즉시 그곳에서 나와 주점으로 돌아갔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어사는 백학산으로 가서 양아버지였던 서역국을 만난다. 그의 도움으로 자신의 친어머니와 만나 가족이 헤어지게 된 사연을 듣고는 도적들을 소탕하기로 한다.


마침내 어사는 해주 군진에서 쓰는 무기와 기치를 앞세우고 인근 읍의 군졸과 합세하여 사천 명을 거느리고 선문 없이 길을 떠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운남도로 들어갔다. 운남도에 들어가 첩첩이 포위하여 도적을 소탕하고는 우선 장수백과 여천추를 잡아내어 꿇어앉히고 다른 도적도 차례차례 꿇어앉힌 뒤에 큰 횃불을 사방에 밝히고 형산맹호(荊山猛虎)처럼 앉아 장수백을 형문하였다.


“천하대적 장수백아, 너의 죄를 네가 아느냐? 또 나를 아느냐? 보아라.”


수백이 머리를 들어서 보니 과연 저의 아들이었다.


“우리 아들 해선아! 네 부모인 줄 몰라보고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자식이 저의 부모에게 이렇게 하느냐?” 


어사가 군사를 호령하여, 


“주장으로 입을 찍으라.” 


하니, 


“이놈 장수백아, 너는 도적질하며 훔치지 못할 것이 없이 파렴치한 짓을 하였으니, 백학산 동구에 가서 무엇을 도적하였느냐? 네 죄가 많으니 자세히 아뢰어라.”


수백이 그제서야 말하였다.


“일이 이미 발각되었으니 어찌 그럴듯한 말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서역국도 남의 자식을 수양자로 삼았고 나도 자식이 없어 남의 자식을 수양자로 삼았으니 저와 내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상벌과 공훈으로 말해보더라도 서역국의 아들이 되는 것이나 나의 아들이 되는 것이나 남의 자식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 아이의 성명을 고친 것만 허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길러준 은혜를 생각하신다면 이다지 괄시할 수 있습니까?”


어사가 또 호령하여, 


“바삐 거행하라.”


하니, 그 소리에 역졸과 무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형추 사오십 대를 때리고 다시 꿇어앉혔다.


이어서 여천추를 잡아들여 주리를 틀며 물었다.


“강릉추월 옥퉁소를 어디에 가서 도적하였느냐? 배에 실렸던 재물을 탈취하면 되었지 무슨 원수를 맺었다고 사람까지 죽였느냐? 천지가 무심치 아니하여 강릉추월 옥퉁소 소리로 나도 전말을 알게 되었고 모친도 찾았으니, 너의 죄를 생각하면 죽어도 아까울 것이 조금도 없느니라.”


여천추가 놀랍고 또 겁이 나서 빌면서 말하였다.


“장인과 사위된 사정만 생각하라. 너는 나의 사위이니 나는 너의 처부모인데 어찌 인정 없이 이다지 악형을 가하느냐? 사정으로 말할진댄 처부모도 부모이니 부모이기는 마찬가지요, 또 이 감사의 재물을 탈취한 것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주리를 트느냐? 또 옥퉁소를 어찌 네가 임자라 하느냐? 본임자는 이 감사요 둘째 임자는 나니라. 또 이 감사 죽이기로 네게 무슨 관계가 되느뇨?” 


하니, 어사가 호령하여 말하였다.


“내가 관계가 없으면 이렇듯 하겠느냐? 이 감사는 바로 나의 부친이니, 너는 나의 불공대천지원수니라.”


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찢어 죽이라 하니 여천추가 그제야 이 감사 아들인 줄 알고 놀라 허둥거리며 실색하고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잠자코 죽기만 바랐다.


―  작자 미상, 「강릉추월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해를 돕는 문항들


42.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과장된 상황을 설정하여 해학성을 유발하고 있다.

전기적 요소[각주:2]를 활용하여 사건의 환상성을 강화하고 있다.

③ 배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낭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④ 초월적 인물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서술자가 개입[각주:3]하여 인물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43. <보기>는 주인공의 이동 경로를 도식화한 것이다.

<보기>



44.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강릉추월전」은 가족과의 ‘이별과 만남’이 서사의 핵심을 이룬다. 주인공은 혈육과의 이별로 인해 기구한 운명에 처하지만, 재회의 과정을 통해 열등한 상황에서 벗어나 원래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의 ‘친부모 찾기’는 개인 존재의 근원을 찾음으로써 상실했던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특정 소재가 혈육임을 증명하는 신표(信標)로 사용된다.


① 어사가 여천추에게 ‘옥퉁소’를 받은 것에서 옥퉁소가 혈육임을 증명하는 신표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겠군.[각주:4]

② 어사가 ‘이 감사는 바로 나의 부친이’라고 여천추에게 밝히는 모습에서 상실했던 자아 정체성을 회복했음을 알 수 있겠군. 

③ 어사가 ‘서역국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보리라’고 다짐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군. 

④ 어사가 친부모를 잃고 두 번에 걸쳐 ‘수양자’가 되는 것은 혈육과의 이별로 인해 기구한 운명에 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 

⑤ 어사가 ‘전말을 알게’ 되고 ‘모친’을 찾은 것은 ‘도적놈의 자식’이라는 열등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겠군.




  1. 도문: 과거에 급제하여 홍패(紅牌)를 받아서 집에 돌아오던 일. [본문으로]
  2. 중요 문학 개념어. 밑줄은 편집자가 단 것임. [본문으로]
  3. 중요 문학 개념어. 밑줄은 편집자가 단 것임. [본문으로]
  4. 옥퉁소는 여천추가 사위인 어사에게 준 것이다. 따라서 옥퉁소는 혈육임을 증명하기 위한 신표로 사용된 것은 아니므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