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은 말을 할 때면 장황하게 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대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꼭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고 그 속에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달변가라 하겠다. 손님이 물을 말이 다하여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이 올라, 

㉠ “옹께서도 두려운 것을 보셨겠지요?” 

하니, 옹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만 한 것이 없다네. 내 오른쪽 눈은 용이 되고 왼쪽 눈은 범이 되며, 혀 밑에는 도끼를 감추고 있고 팔을 구부리면 당겨진 활과 같아지지. 차분히 잘 생각하면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으나,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짐승 같은 야만인이 되고 만다네.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장차 제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쳐 죽이거나 베어 버릴 것이야. 이런 까닭에 성인께서도 이기심을 누르고 예의를 따르며, 사악함을 막고 진실된 마음을 보존하면서 스스로 두려워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네.”


이처럼 수십 가지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아도 모두 메아리처럼 재빨리 대답해 내니, 끝내 아무도 그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옹은 자신에 대해서는 추어올리고 칭찬하는 반면,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롱하고 업신여기곤 하였다. 사람들이 옹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어도, 옹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황해도는 황충이 들끓어 관에서 백성을 독려하여 잡느라 야단들입디다.”

하니, 옹이 묻기를, 

“황충은 뭐 하려고 잡느냐?” 

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답하기를, 

“이 벌레는 크기가 첫잠 잔 누에보다도 작고, 색깔은 알록달록하고 털이 나 있지요. 날아다니는 놈을 ‘명’이라 하고 볏줄기에 기어오른 놈을 ‘모’라 하는데, 우리의 벼농사에 피해를 주므로 ‘멸곡’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잡아다가 땅에 파묻을 작정이랍니다.”

하니, 옹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작은 벌레들은 근심거리도 못 되네. 내가 보기에 종루[각주:1] 앞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황충이라오. 길이는 모두 일곱 자가 넘고, 대가리는 새까맣고 눈알은 반짝거리며 아가리는 커서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인데,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줄줄이 몰려다니지. 곡식이란 곡식은 죄다 해치우는 것이 이것들만 한 것이 없더군. 그래서 내가 잡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큰 바가지가 없어 아쉽게도 잡지를 못했다네.”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은 정말로 그런 벌레가 있기나 한 듯이 모두 크게 무서워하였다.


어느 날 옹이 오기에 나는 멀리서 바라보면서 은어로, 

㉡ “춘첩자(春帖子)에 방제(犭尨[각주:2]啼)로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옹이 웃으면서 말했다.


“춘첩자란 입춘날 문(門)에 붙이는 글씨[文]니, 바로 내 성 민(閔)을 가리키는 것이렷다. 그리고 방(犭尨)은 늙은 개를 지칭하니, 바로 나를 욕하는 것이구먼. 그 개가 울부짖으면 [啼] 듣기가 싫은 법인데, 이는 내 이가 다 빠져 발음이 분명치 않은 것을 비꼰 게로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대가 만약 늙은 개를 무서워한다면, 개를 내쫓는 것이 가장 낫네.


또 울부짖는 소리가 듣기 싫다면, 그 입을 막아 버리게나. 무릇 제(帝)란 조화를 부리는 존재요, 방(尨)은 거대한 물체를 가리키지. 그리고 제(帝)와 방(尨) 자를 한데 붙이면 조화를 부려 위대한 존재가 되나니, 그게 바로 용(帝尨)[각주:3] 이라네. 그렇다면 그대는 나에게 모욕을 가하지 못하고, 도리어 나를 칭송한 셈이 되고 말았구먼.”


― 박지원, 「민옹전」


연암 박지원.




참고할 만한 <보기>

「민옹전」을 비롯한 박지원 소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우의(寓意)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우의는 작가의 생각을 구체적 대상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식으로, 그의 소설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1. 종루 : 서울 종로의 종각. [본문으로]
  2. 적당한 한자가 없어 犭와 尨를 따로 표기합니다. 본래는 합쳐져 있는 글자임. ― 편집자 주. [본문으로]
  3. 용(帝尨 ) : 용을 뜻하는 ‘龍’ 자를 대신해 쓰는 한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