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의 줄거리] 유백로는 조은하에게 백학선(백학이 그려진 부채)을 주며 결혼을 약속한다. 유백로는 조은하를 보호하기 위해 가달과의 전쟁에 원수로 출전하였으나, 간신 최국냥이 군량 보급을 끊어 적군에 사로잡힌다. 태양선생과 충복의 도움으로 유백로의 소식을 접한 조은하는 황제 앞에서 능력을 증명하고 정남대원수로 출전한다. 가달과 대결하던 중 조은하는 선녀가 알려 준 백학선의 사용 방법을 떠올린다.


원수가 말에서 내려 하늘에 절하고 주문을 외워 백학선을 사면으로 부치니 천지가 아득하고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무수한 신장(神將)이 내려와 도우니 저 가달이 아무리 용맹한들 어찌 당하리오? 두려워하여 일시에 말에서 내려 항복하니 원수가 가달과 마대영을 마루 아래 꿇리고 크게 꾸짖어, 


“네가 유 원수를 모셔 와야 목숨을 용서하려니와, 그렇지 않은즉 군법을 시행하리라.”


하니, 가달이 급히 마대영에게 명하여 유 원수를 모셔오라 하거늘 마대영이 급히 달려 유 원수 있는 곳에 나아가, 


“원수는 저의 구함이 아니런들 벌써 위태하셨을 터이오니 저의 공을 잊지 마소서.”


하고 수레에 싣고 몰아가거늘 원수가 아무런 줄 모르고 마루 아래 다다르니 한 소년 대장이 맞이하여, 


“낭군이 대대 명가 자손으로 이렇듯 곤함은 모두 운명이라. 안심하여 개의치 마소서.”


하거늘, 유 원수가 눈을 들어본즉 이는 평생에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이라. 손을 들어 칭찬하며,


“뉘신지는 모르거니와 뜻밖에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 본국 귀신이 되게 하시니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나, 이제 패군한 장수가 되어 군부(君父)를 욕되게 하오니 무슨 면목으로 군부를 뵈오리오? 차라리 이곳에서 죽어 죄를 갚을까 하나이다.” 


원수가 재삼 위로하며, 


“장수 되어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상사(兵家常事)[각주:1]이오니 과히 번뇌치 마소서.”


유 원수가 예를 갖추어 인사하더라. 가달과 마대영을 죄인이 타는 수레에 싣고 회군할 새 먼저 승전한 첩서[각주:2]를 올리고 승전고를 울리며 행군하는데 유 원수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조 원수가 묻기를, 


“장군이 이제 사지(死地)를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오시니 다행하거늘 어찌 이렇듯 수척하신지요?” 


원수가 탄식하며, 


“제가 불충불효한 죄를 짓고 돌아오니 무엇이 즐거우리이까? 원수가 이렇듯 걱정하시니 황공 불안하여이다.”


조 원수가 짐짓 묻기를, 


“듣자온즉 원수가 일개 여자를 위하여 자원 출전하셨다 하오니 이 말이 옳으니이까?” 


유 원수가 부끄러워하며 대답이 없거늘 조 원수가 또 묻기를, 


“장군이 전에 길에서 일개 여자를 만나 백학선에 글을 써 주었더니 그 여자가 장성하여 백년을 기약하나 임자를 만나지 못하여 사면으로 찾아 서주에 이르러 장군의 비문을 보고 기절하여 죽었다 하오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유 원수가 듣고서 비참하여 탄식하기를, 


“제가 군부에게 욕을 끼치고 또 여자에게 원한을 쌓게 하였으니 내 차라리 죽어 모르고자 하나이다.”


원수가 미소하고 백학선을 내어 부치거늘 유 원수가 이윽고 보다가 묻기를, 


“원수는 그 부채를 어디서 얻었나이까?” 


원수가 대답하기를, 


“제 조부께서 상강현령으로 계실 때에 용왕의 현몽을 받고 얻으신 것이오니다.”


유 원수가 다시 묻지 아니하고 내심 헤아리기를, ‘세상에 같 은 부채가 있도다.’하고 재삼 보거늘 원수가 이를 보고 참지 못하여, 


“장군이 정신이 가물거려 친히 쓴 글씨를 몰라보시는도다.” 


하고 부채를 유 원수 앞에 놓으니 유 원수가 비로소 조 소저인 줄 알고 비회를 이기지 못하여 나아가 그 손을 잡고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깨닫지 못하리로다. 나는 대장부로 불충불효를 범하고 몸이 죽을 곳에 들었으되 그대는 규중 여자로 출전입공(出戰立功)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니 가히 규중 호걸이로다.”


하며 여취여광(如醉如狂)[각주:3] 하거늘 조 소저가 또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나 군중이라 말씀할 곳이 아니오, 황상이 기다리심을 생각하고 행군을 재촉하니라.


위수에 이르러 용신(龍神)께 제사하고 3만 군 혼백을 위로한 후 사당을 지어 사적(事績)[각주:4]을 기록하고 농토를 나누어주고 철마다 제사를 받들고 장졸을 놓아 보내어 말하기를, 


“돌아가 부모처자를 반기라.”


하고 남은 군졸을 거느려 행하여 아미산에 이르러서 유 원수의 선산(先山)에 성묘하고 전날 주인과 이웃을 모아 옛일을 이르며 금은을 흩어주고 태양선생을 찾아 전날 베푼 덕택을 사례한 후 늙은 종 충복을 찾아 천금을 상사[각주:5]한 후 서울로 향하니라.


조 원수가 표(表)를 올리기를, 


“정남대원수 조은하는 돈수백배[각주:6] 하옵고 천자께 올리나니 신첩 이 폐하의 특은을 입어 한 번 북을 울려 오랑캐를 소멸하옵고 유 원수를 구하오니 신첩의 외람하온 죄를 거의 갚을 듯하옵니다. 어전에 보고하올 일이 급하오나 조상 분묘를 수리하고 죄를 기다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상이 다 읽으시고 칭찬하여, 


“기특하도다. 조은하는 규중여자로 출전입공함은 고금에 희한한 일이로다.”


하시고 최국냥은 허리를 베어 죽이라 하시며 그 가족을 귀양 보내라 하시었다.



― 작자 미상, 「백학선전」


원더우먼.





참고할 만한 <보기>와 선택지

「백학선전」은 결혼을 약속한 남녀 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내고 재회하는 애정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범을 극복한 여자 주인공이 영웅적 면모를 보이는 여성영웅소설의 성격도 지닌다. 「백학선전」은 백학선이라는 소재에 다양한 서사적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두 가지 성격을 유기적으로 구현했지만, 여자 주인공을 예외적인 존재로 그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① 조은하가 오랑캐를 물리친 것에서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군.

② 황상의 말을 통해 조은하를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군.

③ 유백로와 조은하가 백년을 기약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는 점에서 애정소설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군.

④ 조은하가 공적을 세운 후 황상에게 죄를 기다린다고 한 점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범을 극복[각주:7]하였음을 알 수 있군.

⑤ 조은하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과 유백로가 조은하를 알아보는 것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백학선의 서사적 기능을 알 수 있군.

  1. 병가상사 : 전쟁에서 흔히 있는 일. [본문으로]
  2. 첩서 : 보고하는 글. [본문으로]
  3. 여취여광 : 이성을 잃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문으로]
  4. 사적 : 일의 실적이나 공적. [본문으로]
  5. 상사 : 칭찬하여 상으로 물품을 내려 줌. [본문으로]
  6. 돈수백배 :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계속 절을 함. [본문으로]
  7. 조은하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외람한 죄로 여기고 있으므로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범을 극복하였다고 볼 수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