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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있는 장생이란 사람이 집을 지으려고 하여 산에 들어가 재목을 찾았으나, 빽빽이 심어진 나무들은 대부분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꼭대기에 한 그루가 있었는데,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좌우에서 보아도 역시 곧기만 했다. 때문에 쓸 만한 좋은 재목으로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 뒤에서 살펴보니, 구부러져 있는 나무였다. 이에 장생은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했다.


“아, 나무 가운데 재목이 될 만한 것은 보면 쉽게 살필 수 있고, 고르면 쉽게 가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살폈어도 쓸모없는 재목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구나. 그러니 하물며 사람들이 외모를 그럴 듯하게 꾸미고 속마음을 깊게 숨기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고 그 외모를 보면 친절하고 다정하기만 하며 세세한 행동을 살펴보아도 삼가고 삼가니, 군자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큰 변고를 당하거나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경우에 닥치고 나면 본심을 드러내고야 마니, 국가가 무너지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가 자랄 때, 소나 염소에 의해 짓밟히거나 도끼나 자귀에 의해 찍히는 것도 없이 비나 이슬을 맞고 무성해지 면서 밤낮으로 커가니, 쭉쭉 뻗어 곧게 자라야 함이 마땅할 것 이다. 그럼에도 쓸모없는 재목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 이다지도 심하니, 하물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있는 경우에 있어서랴! 물욕이 참된 성품을 어지럽히고 이해관계가 분별력을 흐리게 하여, 타고난 성품을 굽히고 본래의 모습을 벗어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바르지 못한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이야 조금도 괴이한 것이 아니로구나.”


그가 이 일을 나에게 말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대의 세상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네그려! 비록 그러하나 나 역시 할 말이 있네. 《서경》의〈홍범〉편에 오행을 논하면서 ‘나무는 그 속성이 구부러지거나 바르다’고 하였네. 그렇다면 나무가 굽은 것은 재목감으로는 되지 않을지라도 그 속성으로는 원래가 그러한 것이네. 하지만 공자께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직한 것이니, 정직하지 않고도 살아간다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네. 그렇다면 사람이 고서 정직하지 않게 사는 자가 죽음을 모면하고 사는 것도 역시 요행이라 할 수밖에 없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보건대, 나무 가운데 굽은 것은 비록 보잘것없는 목수일지라도 가져다 쓰지 않지만, 사람 가운데 곧지 못한 자는 아무리 잘 다스려지는 치세일지라도 내버리고 쓰지 않은 적이 없네. 자네도 큰 집을 한번 보게나. 그 집의 들보나 기둥이나 서까래나 각목을 구름 모양으로 꾸미거나 물결처럼 장식한 경우에도 굽은 재목을 보지 못할 것이네. 이번에 또한 조정을 한번 보게나. 공경과 사대부로서 인끈을 차고 고관지위에 올라 조정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자들 치고 바른 도를 지닌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네. 이처럼 나무 가운데 굽은 것은 항상 불행하지만, 사람 가운데 비뚤어진 자는 늘 행복하기만 하다네. 옛말에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 갈고리처럼 굽으 면 공후에 봉해진다.’고 하였으니, 이 말로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굽은 나무보다 대우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네.”


― 장유, 「곡목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