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옹이 졸다가 말하기를, 


“네 두 손으로 내 발바닥을 문지르라.”


하여 생이 종일토록 노옹의 발바닥을 부비더니 노옹이 깨어나 말하기를, 


“그대를 위하여 사방으로 찾아 다녔으나 보지 못하고 후토부 인께 물으니 마고할미 데려다가 낙양 동촌에 가 산다하기로 거기 가보니 과연 숙향이 누상에서 수를 놓고 있거늘 보고 온 일을 표하기 위해 불떵이를 내리쳐 수놓은 봉의 날개 끝 을 태우고 왔노라. 너는 그 할미를 찾아보고 숙향의 종적을 묻되 그 수의 불탄 데를 이르라.” 


하였다. 이랑이 말하기를, 


“제가 처음에 가 찾으니 여차여차 이르기로 표진강가에까지 갔다가 이리 왔는데 낙양 동촌에 데리고 있으면서 이렇게 속일 수가 있습니까?” 


하니 노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마고선녀는 범인(凡人)이 아니라 그대 정성을 시험함이니 다시 가 애걸하면 숙향을 보려니와 만일 그대 부모가 숙향 을 만난 것을 알면 숙향이 큰 화를 당하리라.”


하고 이미 간 데 없었다. 그리하여 이랑은 집으로 돌아왔다.


선시(先時)[각주:1]에 할미 이랑을 속여 보내고 안으로 들어와 낭자더러 말하기를, 


“아까 그 소년을 보셨습니까? 이는 천상 태을이요, 인간 이 선입니다.”


하니 낭자가 물었다.


“태을인 줄 어찌 아셨습니까?” 


할미가 말하기를, 


“그 소년의 말을 들으니 ‘대성사 부처를 따라 요지(瑤池)에 가 반도(蟠桃)[각주:2]를 받고 조적의 수(繡) 족자를 샀노라.’ 하니 태을임이 분명합니다.”


하니 낭자가 말하였다.


“세상 일이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니 옥지환(玉指環)[각주:3]의 진주를 가진 사람을 살펴주십시오.”


할미가 말하기를 


“그 말이 옳습니다.”


하였다.


하루는 낭자가 누상에서 수를 놓더니 문득 난데없는 불똥이 떨어져 수 놓은 봉의 날개 끝이 탔는지라 낭자가 놀라 할미에게 보이니 할미가 말하기를, 


“이는 화덕진군의 조화니 자연 알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때 이랑이 목욕재계하고 황금(黃金) 일정(一正)을 가지고 할미 집을 찾아가니 할미가 맞이하여 말하기를, 


“저번에 취한 술이 엊그제야 깨어 해정(解酲)하려고 하던 차에 오늘 공자를 만나니 다행한 일입니다.”


하니 이랑이 말했다.


“할미 집의 술을 많이 먹고 술값을 갚지 못하였기로 금전 일정을 가져와 정을 표하노라.”


할미가 말하기를, 


“주시는 것은 받거니와 제 집이 비록 가난하나 술독 위에 주 성(酒星)이 비치고 밑에는 주천(酒泉)이 있습니다. 가득찬 술 동이의 임자는 따로 있는 법이라, 어찌 값을 의논하겠습니까? 다른 말씀은 마시고 무슨 일로 수천 리를 왕래하셨습니까?” 


하니 이랑이 탄식하며 말했다.


“할미의 말을 곧이듣고 숙향을 찾으러 갔노라.”


할미가 말하기를, 


“낭군은 참으로 신의 있는 선비입니다. 그런 병인(病人)을 위하여 그렇게 수고하니 숙향이 알면 자못 감사할 것입니다.” 


하니 이랑이 말하였다.


“헛수고를 누가 알겠는가?” 


할미가 거짓으로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숙향이 이미 죽었습니까?” 


이랑이 말하기를, 


“노전에 가 노옹의 말을 들으니 낙양 동촌 술 파는 할미 집에 있다고 하니 할미집이 아니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을 속임이 너무 짓궂도다.”


하니 할미 정색하여 말하기를, 


“낭군의 말씀이 매우 허단합니다. 화덕진군은 남천문 밖에 있고 마고선녀는 천태산에 있어 인간에 내려올 일이 없거늘 숙향을 데려 갔다는 말이 더욱 황당합니다.”


하였다. 이랑이 말하기를, 


“화덕진군이 말하기를, ‘숙향이 수놓는데 불똥을 나리쳐 봉 의 날개를 태웠으니 후일 징간(徵看)하라.’ 하였으니 그 노옹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라고, 물으니 할미가 말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낭군의 정성이 지극합니다.”


이랑이 말하기를, 


“방장(方丈), 봉래(蓬萊)를 다 돌아서도 못 찾으면 이선이 또한 죽으리로다.”


하고 술도 아니 먹고 일어나거늘 할미 웃으며 말하기를, 


“숙녀(淑女)를 취하여 동락(同樂)할 것이지 구태여 그런 병든 걸인을 괴로이 찾습니까?” 


하니 이랑이 말하기를, 


“어진 배필이 없음이 아니라 이미 전생 일을 알고서야 어찌 숙향을 생각지 않겠느냐? 내 찾지 못하면 맹세코 세상에 머 물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할미가 또 말하기를, 


“제가 아무쪼록 찾아 기별할 것이니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니 이랑이 말하기를, 


“나의 목숨이 할미에게 달렸으니 가련하게 여김을 바라노라.” 


하고 할미를 이별하고 집에 돌아와 밤낮으로 고대하더니 삼일 후에 할미가 나귀를 타고 오거늘 기쁘게 맞이하여 서당(書堂) 에 앉히고 물었다.


“할미는 어찌 오늘에야 찾아 왔는가?” 


할미가 말했다. 


“낭군을 위하여 숙낭자를 찾으러 다니니 숙향이란 이름이 세 곳에 있으되 하나는 태후 여감의 딸이요, 하나는 시랑 황 전의 딸이요, 하나는 부모 없이 빌어먹는 아이였습니다. 세 곳에 기별한 즉 둘은 응답하나 걸인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내 배필은 진주 가져간 사람이니 진주를 보아야 허락하리라’ 하더이다.”


이랑이 대희하여 말하기를, 


“필시 요지에 갔을 적에 반도를 주던 선녀로다. 수고스럽지만 이 진주를 갔다가 보이라.”


하고 술과 안주를 내어 관대하니 할미 응락하고 돌아가 낭자 더러 이생의 말을 이르고 진주를 내어 주거늘 낭자가 보고 ‘맞습니다.’ 하니 할미는 웃고, 즉시 이랑에게 가 말했다.


― 작자 미상, 「숙향전」


Photo by Mayur Gala on Unsplash


  1. 선시 : 이전의 어느 날. [본문으로]
  2. 반도 : 삼천 년마다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경에 있는 복숭아. [본문으로]
  3. 옥지환 : 옥으로 만든 가락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