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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옷과 밥을 두고 들먹은 저 고공[각주:1]아 

우리 집 내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며 이르리라 

처음의 할아버지 살림살이하려 할 때 

어진 마음 많이 쓰니 사람이 절로 모여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 집을 지어내고 [A] 

써레, 보습, 쟁기, 소로 전답을 경작하니 

올벼논 텃밭이 여드레갈이로다 

자손에게 물려줘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도 근검터라 

저희마다 농사지어 가멸게[각주:2] 살던 것을 

요사이 머슴들은 철이 어찌 아주 없어 

밥사발 큰지 작은지 옷이 좋은지 궂은지에만

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각주:3]를 시기하는 듯 

무슨 일 생각 들어 흘깃흘깃하느냐 

너희네 일 아니하고 시절조차 사나워 

가뜩이나 내 세간이 졸아들게 되었는데 

엊그제 날강도에 가산을 탕진하니 

집 하나 불타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다 

크나큰 제사를 어찌하여 치르려는가 

김가 이가 머슴들아 새 마음을 먹자꾸나 


― 허전, 「고공가」



비가 새어 썩은 집을 그 누가 고쳐 이며 

옷 벗어 무너진 담 누가 고쳐 쌓을까 

불한당 도적들 멀리 안 다니거늘 

화살 찬 경비병들 그 누가 힘써 할까 

크게 기운 집에 마노라[각주:4] 혼자 앉아 

분부를 뉘 들으며 논의를 뉘와 할까 

낮 시름 밤 근심 혼자 맡아 계시니 

옥 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이리 

이 집 이리 되기 뉘 탓이라 할 것인가 

철없는 종의 일은 묻지도 아니하려니와 

돌이켜 헤아리니 마노라 탓이로다 

내 상전 그르다 하기에는 종의 죄가 많건마는 

그렇지만 세상 보기에 민망하여 여쭙니다 

새끼 꼬기 멈추시고 내 말씀 들으소서 

집일을 고치려면 종들을 휘어잡고 

종들을 휘어잡으려면 상벌을 밝히시고 

상벌을 밝히려면 어른 종을 믿으소서 

진실로 이렇게 하시면 집안 절로 일어나리라 


― 이원익, 「고공답주인가[각주:5]





참고할 만한 <보기>와 선택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발화는 작가에 의해 기획되고 통제된다. 화자의 역할을 맡은 인물이 청자를 상정하지만 독백에 가까운 형태로 발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발화로 구성된 대화가 작품 내에서 나타나기도 하며, 발화의 주고받음이 텍스트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텍스트 간의 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발화 내용 및 발화들 간의 관계를 주재하고 조정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를 구체화한다.


③ 「고공가」에서는 청자로 호명된 ‘고공’의 반응이 제시되지 않아 화자의 발화가 독백에 가까운 형태로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⑤ 「고공답주인가」는 이 작품이 「고공가」에 대한 화답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표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 사이에는 텍스트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고공 : 머슴 [본문으로]
  2. 가멸게 : 재산이나 자원 따위가 넉넉하고 많게. [본문으로]
  3. 호수 : 공물과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일을 책임지는 사람. [본문으로]
  4. 마노라 : 상전, 마님, 임금 등 남녀를 두루 높이어 이르는 말. [본문으로]
  5. '고공'이 '주인'에게 '답'하는 '노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