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은 근대 과학의 양적인 크기를 중시하는 사고를 수용하며 발달했다. 고대 과학이 사물 변화의 질적인 부분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근대 과학은 갈릴레오의 “자연이라는 책을 펴 보라. 거기에는 수(數)라는 글자로 가득 차 있다.”라는 발언에 나타나듯 양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즉 양화할 수 있는 것을 과학으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대 과학은 미리 수학적으로 설정한 믿음을 통해 자연에 접근하였다. 일례로 케플러는 우주가 기하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믿음에 따라, 이에 맞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연 세계에 대하여 기하학과 같은 수학적 관점의 선험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근대 철학의 이성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수학에 심취했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믿는 직관을 통해 인식한 것들로 세계에 접근하려 하였다. 직관은 ‘순수한 정신의 의심할 여지없는 파악이며, 이것은 오직 이성의 빛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그 어떠한 의심 없이 분명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위해 대상을 직관으로 분절하여 더 나눌 수 없는 단순 본성을 찾고, 이 단순 본성들을 복합한 개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이후 근대 철학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은 이러한 근대 철학의 흐름에 반발한다. 그는 이성이 세계를 분절시키며, 질적인 시간마저 양적으로 쪼개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르그송은 세계의 사물들이 서로 경계가 모호한 채로 연속적인 전체를 이루고, 서로 수많은 관계 속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성이 이러한 세계를 분절시킴으로써 전체성을 잃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에 대한 통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세계를 통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성 대신 직관과 지속을 제시한다. 그의 직관은 공감적 경험이자 통합적 경험을 의미한다. 즉 그의 직관은 사물의 내부로 들어가 서로를 느끼게 되는 공감적 경험을 통해 각각의 이질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하나가 다른 하나로 스며가면서 전체를 향해 통합되는 경험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렌지색에 공감하는 과정을 보자.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직관을 통해 공감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하면, 가장 어두운색으로서의 붉은색과 가장 밝은색으로서의 노란색 사이의 이질적인 다양한 색들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시 그것들이 모호한 경계 속에서 스며가면서 통합되는 과정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베르그송은 공감과 통합은 지속되는 시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근대 철학의 이성론은 시간을 분절하여 공간 안에 정지된 상태로 보았지만, 베르그송은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오히려 공간적인 것이 시간적인 것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다는 주장을 하였다. 예를 들어 활짝 핀 장미꽃을 볼 때, 우리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장미꽃을 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꽃잎이 모두 떨어진 가지만을 보게 된다. 이전에 장미꽃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은 비었고, 이는 시간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양적인 변화를 담은 시간이 아닌 개인 체험이 반영된 질적인 시간임도 주장하였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베르그송의 철학과 유사성을 가진 사조가 인상주의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색을 혼합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색들을 합치는 대신 각각의 이질성을 살리면서 색들의 경계를 흐리게 표현하여 한 가지 색이 다른 하나의 색으로 감상자의 눈에 의해 분절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섞여 들어가도록 표현하였다. 또한 평면의 그림판에 그려진 그림이 3차원적 입체감을 갖도록 개발한 원근법과 같은 기법을 자제하고 색채를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더불어 인물화 속에 지성을 통해 포착된 인물의 위대함이나 교훈을 담으려 했던 고전주의와 달리 대상의 인상을 표현하려 한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의미도 없다.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라는 색채의 미적 효과를 위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나체의 여자」를 그렸다. 고전주의에서는 풍경이 인간과 인간 행위의 배경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인상주의 회화에서는 인간도 독점적 지위 대신 배경의 일부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다. 심지어 대상에게 받은 인상에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에게 받은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었지, 그 대상이 인간인지 풍경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색들을 합쳐 만든 중간색은 편견이므로 이를 해체해 고유의 색으로 되돌린 후, 빛이 연출하는 색채의 아름다운 변화들을 연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로써 대상에 어떤 의미나 교훈을 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인상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베르그송이 이야기한 근대 철학이 가져온 지성에 의한 분절로부터의 회복과, 이질적인 것의 연속 안에서 공감을 통한 통합으로 전체성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 (출전) 조중걸, 『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II』





에두아르 마네, 「피리 부는 소년」(1866)


딸림 문항의 <보기>에 있던, 위 이미지와 그 설명 

이 작품은 빛이 정면에서 대상을 비추지만 손과 발을 빼고는 그림자를 표현하지 않아 평면감이 나타난다. 또한 이 작품은 풍경이 없으며, 색이 입체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검은색, 붉은색, 흰 색과 같은 원색을 이용하여 각각의 색을 살리면서도 대상의 인상을 드러내는 인물화 안에 통합한 것이다.

① 풍경을 전혀 그리지 않은 것은 대상에서 받은 인상에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겠군. 

② 최소한의 그림자만으로 작품을 표현한 것은 입체감을 위한 기법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겠군. 

③ 색들을 합친 중간색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각각의 색들이 갖는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겠군. 

④ 색채의 미적 효과를 중심으로 표현한 것은 인물에 특정한 의미나 교훈을 담기 위한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