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조상과 성현의 높은 덕행을 기리고 권계(勸誡)하기 위해 제사를 중요시했다. 조선 시대 자화상을 비롯한 대다수의 초상화는 이러한 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조선 시대 대부분의 초상화는 별도의 배경이나 현실 공간에 대한 묘사 없이 초상화의 주인공만이 다소곳이 화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대상 인물을 시각적으로 강조하여 한 사람에게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경건한 태도를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얼굴이 정면에서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려진 칠분면이나 팔분면을 취하게 하고 시선은 얼굴과 같은 방향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화폭 속 인물에 대해 공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손을 노출시키지 않거나 예의바른 공수 자세를 취하게 한 것도 숭앙심(崇仰心)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조선 시대 초상화가는 담담하고 절제된 군자의 자세나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대상의 외모와 복장을 통해 그려내고자 했다. 예를 들면 임금의 초상인 어진은 용포를 입은 군 주의 외모를 통해 위풍당당한 모습을 표현했고, 공신상의 경우도 관복을 입은 외모를 통해 위엄 있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사대부상의 경우 야복 * 으로 욕심 없는 은일의 태도를 표현하거나 관복으로 유학자의 풍채를 보여주기도 했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얼굴이나 의복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시대의 추이에 따라 인물의 실체감을 더 강조하는 화법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안면이나 옷 주름의 음영 묘사는 평면적인 묘사 기법에서 후기로 갈수록 안면이나 옷 주름 선 주변에 형성된 음영을 나타내어, 입체적인 느낌이 더욱 뚜렷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도 인물이 지닌 바람직한 성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초상화는 인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인물이 지닌 바람직한 성정을 표현했다. 즉 조선 시대 초상화가는 초상화 속 인물과 실제 인물과의 내외적인 닮 음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초상화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공경할 수 있도록 커다란 크기로 사당이나 서원에 걸렸고, 우리 조상들은 초상화 속 인물을 단순한 그림 속 인물이 아닌 조상과 성현 그 자체로 인식했다.


* 야복: 야인이 입는 옷. 여기서는 관복이 아닌 평상복을 말함.


― (출전)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이해를 돕는 문항


29. 윗글을 읽고 <보기>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강세황 70세 자화상>은 조선 후기작으로, 팔분면에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의복은 야복을 입은 전신부좌상이다.


① 인물의 손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굴을 부각하려고 한 것이겠군.

② 야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인물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겠군.[각주:1]

③ 옷 주름 선 주변에 음영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 입체감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겠군.

④ 안면을 우측으로 돌려 팔분면을 취한 것으로 보아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고 한 것이겠군.

⑤ 특별한 현실 공간을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보는 사람이 인물에만 집중하도록 한 것이겠군.

  1. 3문단에서 야복을 입은 초상화는 욕심 없는 은일의 태도를 표현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