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여..ㅠㅠ (Photo by Henrikke Due on Unsplash)


한국어에서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높임법 차원에서 서로 구별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나이’와 ‘연세(年歲)’, ‘생일(生日)’과 ‘생신(生辰)’, ‘밥’과 ‘진지’ 등의 명사 어휘를 비롯하여 ‘주다’와 ‘드리다’, ‘고맙다’와 ‘감사하다’, ‘미안하다’와 ‘죄송하다’ 같은 동사나 형용사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보이는 높임의 차이는 단어의 종류와 관련이 있어, ‘나이’와 ‘연세’처럼 고유어와 한자어의 의미가 비슷할 경우, 일반적으로 고유어보다는 한자어가 더 높은 말로 쓰인다. 물론 ‘생일’과 ‘생신’의 예처럼 같은 한자어끼리도 높임의 정도에 차이를 보이거나 ‘밥’과 ‘진지’처럼 고유어 가운데서도 높임의 정도가 다른 예들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 대화에서 한국어 높임 표현의 선택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으로는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을까? 여기에는 대화 참가자들 사이의 ‘서열’이나 ‘친분’, 또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의 ‘격식성’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서열’이란 화자와 청자의 나이나 직위, 친족 항렬 등의 차이를 말하는데, 이러한 서열에 따라 높임 표현의 선 택이 달라진다. 가령 사과나 부탁을 하는 상황에서 쓰는 ‘미안하다’와 ‘죄송하다’의 경우, 상위자에게는 ‘죄송하다’를, 하위자 에게는 ‘미안하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언어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두 단어가 쓰일 수 있 는 높임의 등급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미안하다’는 ‘하십시오체’에서부터 ‘해라체’까지 특별한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반면, ‘죄송하다’는 ‘하십시오체’나 ‘해요체’에서는 많이 쓰이지만, ‘하오체’ 이하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제약이 있다. 이와 같은 높임의 차이는 ‘죄송하다’의 쓰임 영역이 주로 상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반면, ‘미안하다’는 하위자에게도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한국인 화자들이 사회적 신분이 더 높은 사람에 대한 사과의 표현으로 ‘미안하 다’보다 ‘죄송하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서열상으로 높은 신분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와의 ‘친분’, 곧 상대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에 따라 높임 표현을 달리 선택한다. 따라서 윗사람에 게는 ‘죄송하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같은 윗사람이더 라도 친밀감을 갖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를 쓸 수 있다. 또한 아랫사람이더라도 별로 친하지 않거나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죄송하다’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높임 표현의 선택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의 ‘격식성’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즉 평소에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를 쓰더라도, 회의석상이나 법정에서와 같은 격식적인 상황에서는 ‘죄송하다’를 선택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