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kutaso.com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을 부정문이라고 한다. 국어의 부정 표현은 부정 부사 ‘안’, ‘못’과 부정 용언 ‘아니하다’, ‘못하다’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부정 부사를 통한 부정문을 짧은 부정문, 부정 용언을 통한 부정문을 긴 부정문이라고 한다. ‘안, 아니하다’의 부정은 어떠한 상태를 단순하게 부정하는 상태 부정을 나타내거나, 어떤 동작이 주어의 의지에 의해 일어나지 않은 의지 부정을 나타낸다. ‘못, 못하다’의 부정은 일반적으로 주어의 능력이나 다른 원인 때문에 그 행위가 일어나지 못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국어의 부정 표현에는 몇 가지 예외적인 현상이 보인다. 우선 형용사가 서술어로 쓰인 문장에서는 의지 부정 표현, 능력 부정 표현이 사용되지 않음을 (1)을 통해 알 수 있다. (1)의 ㄴ,ㄷ에서 ‘안, 않다’가 사용되었는데, 이들 표현은 의지 부정 표현이 아니라 상태 부정 표현으로 사용된 것이다. 


(1) ㄱ. 영희는 예쁘다.

    ㄴ. 영희는 안 / *못 예쁘다.

    ㄷ. 영희는 예쁘지 않다. / *못하다.

    

한편 부정 표현이지만 실제 의미로는 부정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문장의 형식은 물음을 나타내나 답변을 요구하지 않고 강한 긍정 진술을 내포하고 있는 ㉠수사 의문문이 여기에 해당한다, (2)의 ㄱ은 “예, 안 갔어요.”와 “아니요, 갔어요.”의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한 부정 의문문이나, (2)의 ㄴ은 수사 의문문으로 쓰인 것이어서 부정 표현이 쓰였다고 하더라도 부정의 의미가 없다. 


(2) ㄱ. 영희 아직 안 갔니?

    ㄴ. (책 한 권은 충분히 사 줄 수 있다는 뜻으로) 영희한테 책 한 권 못 사 줄까?

    

국어의 부정 표현 논의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부정의 범위에 대한 것이다. 이는 부정 표현을 통해서 부정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이다. 짧은 부정문이든 긴 부정문이든 의지 부정이든 능력 부정이든 간에 부정 표현에 있어서 부정의 범위는 모두 중의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3)에서 ‘안’이 부정하는 내용은 (3)-a처럼 ‘철수’가 될 수도 있고, (3)-b처럼 ‘그 책’이 될 수도 있으며, (3)-c처럼 ‘읽다’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들 세 가지가 동시에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만 부정된다.


(3) 철수가 그 책을 안 읽었다.

   a. 그 책을 안 읽은 것은 철수였다.   

   b. 철수가 안 읽은 것은 그 책이었다.

   c. 철수가 그 책에 대해 하지 않은 것은 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부정 범위의 중의성을 해소하는 방안에는 ‘철수, 그 책, 읽다’의 어느 하나에 강세를 주어 읽거나, ‘철수가 그 책은 안 읽었다.’처럼 부정하고자 하는 단어에 보조사 ‘은/는, 만, 도’ 등을 덧붙이거나, 문맥을 통해서 중의성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 이관규, <국어의 부정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