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국어의 어휘 수는 어림잡아 60만 개 안팎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한자어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한자어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우리 조상들의 관념과 사유의 세계를 지배하였기 때문에 한자어는 국어 어휘 안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외래의 요소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국어의 어휘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한자어가 국어의 어휘 속에 자리 잡게 되는 방식을 살펴보자.


첫째, 단어의 형성에서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할 때 한자어의 의미가 핵심이 되는 경우이다. 특히 고유어와 결합하여 동사, 형용사가 될 때 이러한 경우가 많은데 ‘탐내다(貪내다), ㉠이롭다(利롭다)’ 등이 이런 예에 속한다.


둘째, 한자어구(漢字語句)가 국어 어휘 체계 안에서 하나의 낱말로 인정됨으로써 한문이 지니고 있는 통사적 특성이 사라지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각기 성격을 달리하는 한자어의 무리가 있다. 첫 번째 무리는 도대체(都大體), 심지어(甚至於) 등 국어에서 하나의 품사로 취급되는 어구들이고, 두 번째 무리는 새옹지마(塞翁之馬), 막역지우(莫逆之友)와 같이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로 만들어진 어구들이며, 세 번째 무리는 한자의 원뜻대로 풀이하면 우리말 어순과는 달리 뒤바뀐 것으로 보이는 낱말들, 예컨대 관광(觀光:경치를 구경함), 보전(保全:온전하게 지킴)같은 것들이다.


셋째, 한자어 본래의 한자음이 변하여 국어의 고유어처럼 쓰이는 경우로 ‘과녁[貫革:관혁], 가난[艱難:간난]’ 등과 같은 낱말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낱말은 본래는 한자어였지만 한자의 원음을 포기하고 우리말 소리로 변하여 쓰이면서 고유어로 혼동되기도 한다.


넷째, 한자가 고유어와 동의(同義) 중복의 형식으로 어울려 새로운 우리말을 만들어 내는 경우이다. ‘분가루(粉가루), 온전하다(온全하다)’ 등의 낱말들이 이런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낱말들은 의미가 중첩되면서 원래의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들을 통하여 한자어는 고유어와 잘 어울리면서 국어의 어휘 수를 풍부하게 늘려왔고 지금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 심재기, ‘국어의 어휘 구조와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