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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장면에 대하여 화자는 몇 가지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언어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념화하는 것을 대안적 사고라 하는데, 이것은 화자가 장면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면의 ‘해석’은 장면을 개념화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화자의 선택을 가리키며, 의사소통의 효율성과 관련한 인지 능력의 발현이다.


그러면 장면이나 상황의 해석에 작용하는 인지 능력 기제인 ‘특정성’과 ‘시점’을 중심으로 장면에 나타나는 해석의 양상을 살펴보자. 한 가지 장면을 다양한 정도의 층위에서 파악하는 ‘특정성’은 주로 계층 관계에서 작용한다. 해당 장면을 상위 층위에 가깝게 파악할 때는 그 해석이 추상적이며, 하위 층위에 가깝게 파악할 때는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작동한다.


(1) a. 대문 앞에 누군가가 있다.

    b. 대문 앞에 키가 큰 청년이 서 있다.

(1)은 동일한 장면을 기술한 것인데, 이들 표현은 ‘특정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a에서 화자는 인물의 특성에 주목하지 않은 채 ‘누군가’로 해석하고 있으며, b는 a와 달리 인물의 ‘키가 큰’ 특성에 주목하여 장면을 해석한 것이다. 이와 같이 화자는 해당 장면의 다 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특정성’의 층위를 조절하고 선택한다.


또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장면에 대하여 화자가 어떤 ‘시점’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장면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경우 ‘시점’이란 화자가 장면의 해석에서 취하는 관점이나 입장을 뜻한다. 화자의 ‘시점’에 관련된 요소로 ‘객관성’과 ‘주관성’은 하나의 장면에서 화자가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객관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 또는 주관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화자로부터 분리된 장면의 해석을 ‘객관성’이라 하고, 화자가 포함된 장면의 해석을 ‘주관성’이라고 한다.


(2) “너는 엄마가 돈 만드는 기계로 보이니?” 

(3) “너는 내가 돈 만드는 기계로 보이니?”

(2)와 (3)은 용돈을 거듭 요구하는 아이에게 화난 어머니가 사용한 표현으로서, ‘엄마’와 ‘나’는 동일 인물이다. 그런데 (3)은 화자가 묘사하는 장면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주관적인 해석을 취하고 있으나, (2)는 화자가 자신을 상위층의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묘사하는 장면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객관적 해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주관적, 객관적 ‘시점’의 선택에는 화자의 해석이 작용하고 있다.


결국 장면의 의미란 객관적 대상의 개념적 내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인지 주체의 ‘해석’을 망라한 것이다.


― 임지룡, '장면의 인지적 해석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