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어문화운동본부

언어에는 사회상의 다양한 측면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꾸준히 양성평등을 향해서 변화하고 있지만, 언어의 변화 속도는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국어에는 남녀차별의 사회상을 알게 해 주는 증거들이 있다.


우리말에는 그 자체에 성별을 구분해 주는 문법적 요소가 없다. 따라서 남성을 지칭하는 말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 따로 존재해야 하지만, 국어에는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대등하게 사용되고, 이들을 모두 아울러 가리킬 때는 ‘어버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어린이’도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리킬 때 쓰이고,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남자 어린이’, ‘여자 어린이’가 쓰인다. 이와 같은 말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 변호사, 사장’ 등은 그 직업이나 직책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남성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고, 여성을 가리킬 때는 ‘여의사, 여변호사, 여사장’ 등이 따로 사용되고 있다. 즉, 여성을 예외적인 경우로 취급함으로써 남녀차별의 가치관을 이 말들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평상어에서는 ‘부모, 소년소녀, 남녀’와 같이 남성을 앞세우고, 속어나 비어 등 부정적인 언어에서는 ‘년놈들, 에미애비’와 같이 여성을 앞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표현하는 말에도 남녀의 차이가 나타난다. 사회생활을 표현하는 말은 여성에 비해 남성과 관련된 말이 많고, 외모나 성품, 행동을 표현하는 말은 남성보다 여성과 관련된 말이 많다. 이러한 언어적 현상 중 전자는 과거에 남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던 사회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자는 남성이 여성의 외모나 성품, 행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녀의 사회적 차이가 언어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모나 성품, 행동을 표현하는 말 중에 부정적인 묘사어(‘요염하다, 요망하다, 꼬리를 치다’ 등)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는 점은 단순한 차이가 아닌 부정적인 여성관이 작용한 차별의 결과이다. 성적 순결과 관련한 말로 여자의 경우에는 ‘처녀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총각성’이라는 말이 없다는 점도 그 예이다. 순결을 잃은 총각과 처녀를 평가할 때 여성의 경우는 좋지 않게 보고, 총각의 경우는 상관하지 않던 과거의 차별적 가치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언어가 관계하고 있는 사회상에 남성과 여성이 관련되어 있는 이상, 남녀의 차이가 언어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 남녀의 사회적 위치가 과거와 다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의 결과가 앞으로 언어에 반영되겠지만, 현재 언어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워감으로써 남녀의 ‘차이’가 더 이상 ‘차별’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 전혜영, ‘국어에 나타나는 남녀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