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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언어기호 즉,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그 단어를 다의어(多義語)라 한다. 가령 ‘다리[脚]’는 동물의 하체 부분을 가리키지만 ‘책상 다리’나 ‘지겟다리’에서처럼 물체의 한 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때 ‘다리’는 다의어이며, 이 ‘다리’가 나타내는 두 가지 의미의 관계를 다의 관계(多義 關係)라 한다.


다의어는, 소리가 같지만 서로 다른 단어로 구분하는 동음이의어와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강(江)이나 냇물에 놓이는 시설물인 ‘다리[橋]’는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와 소리는 같지만 별개의 단어인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로 구별하여 별도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책상 다리’나 ‘지겟다리’의 ‘다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를 설명하는 ‘다리’의 하위 항목으로 삼아, 같은 단어이되 의미가 좀 갈린 것이라 해석한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동음이의(同音異義) 관계는 ‘다리1[脚, leg]’, ‘다리2[橋, bridge]’와 같은 방식으로, ‘다리1’의 다의(多義) 관계는 ‘①, ②, ③ ...’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하여 ① 동물의 다리, ② 물체의 다리 등과 같이 하위항목에서 뜻을 풀이한다.


이러한 구분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의미의 유사성(類似性)을 들 수 있다. ‘책상 다리’의 ‘다리’는 사람의 다리와 의미상으로 공통된 속성을 가진다. 책상 전체를 사람의 몸으로 쳤을 때 그 하체 부분에 속한다는 속성이 그것이다. 이것은 ‘지겟다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강의 ‘다리’는 어떤 전체의 하체 부분이라는 속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단어로 구별하여 ‘다리1’의 동음이의어로 처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코’를 들 수 있다. ‘버선코’와 ‘그물코’의 ‘코’는 얼굴 중앙에 튀어나온 신체 기관으로서의 ‘코1[鼻, nose]’와 어떤 의미 관계일까? 버선 앞쪽 끝에 뾰족하게 올라온 부분을 뜻하는 ‘버선코’의 ‘코’는 물체의 중앙에 솟아있다는 점에서 신체 기관으로서의 ‘코1’와 형태의 유사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코1’에서 의미가 갈린 다의관계로 보고 ‘코1’의 하위 항목으로 풀이한다. 하지만 그물이나 뜨개질한 물건 등의 눈마다의 매듭을 뜻하는 ‘그물코’의 ‘코’는 어떨까? ‘코1’와 형태나 기능 등에서 유사성을 찾기 어려우므로, 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단어로 보고 ‘코2[stitch]’로 구분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기관인 ‘코’와 ‘버선코’의 ‘코’는 다의 관계라고, ‘그물코’의 ‘코’는 동음이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의미의 유사성이라는 기준이 늘 선명하고 객관적일 수 없어 두 의미의 관계가 ‘동음이의’의 관계인지 ‘다의’의 관계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이때는 단어의 어원(語源)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원적으로 같았던 단어이면 현재 의미가 다소 멀더라도 한 단어의 다의 관계로 보고, 어원적으로 다른 단어는 별개 단어의 동음이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다.


― 이익섭, ‘다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