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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을 ⓐ 관통하고 있는 사고방식은 “차원 높은 덕은 덕스럽지 않으므로 덕이 있고, 차원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므로 덕이 없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말에서 노자는 ‘덕스럽지 않음’과 ‘덕이 있음’, ‘덕을 잃지 않음’과 ‘덕이 없음’을 함께 서술해 상반된 것이 공존한다는 생각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명(名)’에 대한 노자의 견해와 맞닿아 있다.


노자는 하나의 ‘명(A)’이 있으면 반드시 ‘그와 반대되는 것 (~A)’이 있으며, 이러한 공존이 세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명’은 대상에 부여된 것으로 존재나 사태의 한 측면만을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겨나고, 길고 짧음이 서로 형체를 갖추고, 높고 낮음이 서로 기울어지고,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라는 노자의 말은 A와 ~A가 같이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노자에 따르면, A와 ~A가 공존하는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A는 A이다.’와 같은 사유에 ⓑ 매몰되어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仁), 의(義), 예 (禮), 충(忠), 효(孝) 등을 지향함으로써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 유가(儒家)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유가에서의 인, 의, 예, 충, 효 등과 같은 ‘명’의 강화는 그 반대적 측면을 동반하게 되어 결국 사회의 혼란이 ⓒ 가중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법령이 더욱 엄하게 되면 도적도 더 많이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도적을 제거하기 위해 법령을 강화하면 도적이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법이 엄격하게 시행되어도 범죄자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교활한 꾀와 탐욕으로 그 법을 피해 가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도적들이 점차 생기고, 급기야는 그 법을 피해가는 도적들이 더욱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향해야만 하는 이상적 기준으로 ‘명’을 정해 놓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사회 질서가 안정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명’에 관한 노자의 견해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인한 갈등과 투쟁이 극심했던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의 혼란을 ⓓ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당대 사회가 ‘명’으로 제시된 이념의 지향성과 배타성을 이용해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가득 차 있다고 여겼다. 노자는 문명사회를 탐욕과 이기심 및 이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념의 산물로 보고, ㉠ 적은 사람들이 모여 욕심 없이 살아가는 소규모의 원시 공동체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자는 ‘명’으로 규정해 놓은 특정 체계나 기준 안으로 인간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인위적인 규정이 없는 열린 세계에서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평화로운 안정된 삶을 ⓔ 보장해 준다고 생각했다.


― (출전) 이동철 외, 『21세기의 동양 철학』 





이해를 돕는 문항


20. 윗글의 ‘노자’와 <보기>의 ‘공자’에 대해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와 같이 ‘A는 A답게 되어야 한다.’는 공자의 논리는 현실 속의 개체는 이상적인 개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변하는 이상적 기준인 ‘명(名)’에 부합해야만 한다는 논리이다. 공자는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마땅히 예(禮)를 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는 사회 구성원들이 예에 따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사회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① 노자는 공자와 달리 ‘명’이 불변하는 이상적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② 노자는 공자와 달리 ‘예’와 같은 이념이 실현되려면 이념을 지향해 초래되는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다.[각주:1]

③ 공자는 노자와 달리 ‘예’에 의해 사회의 혼란이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다.

④ 공자는 노자와 달리 사회 구성원들이 ‘명’에 부합하도록 마땅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⑤ 노자와 공자 모두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1. 노자는 ‘예’와 같은 이념이 그 반대되는 것을 동반해 사회 혼란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지향해야만 하는 이상적 기준으로 ‘예’와 같은 것을 정해 놓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사회 질서가 안정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즉 노자는 ‘예’와 같은 이념의 실현을 지향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가 ‘예’와 같은 이념의 실현을 지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자는 ‘예’와 같은 이념의 실현을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와 같은 이념의 실현의 조건으로 이념을 지향해 초래되는 문제점들의 극복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