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인 윌슨은 21세기 과학 기술의 시대에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은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어느 한 가지 학문만으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에 그는 다양한 학문 간 ‘통섭(統攝)’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가 말한 통섭이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과 철학, 심리학 등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인문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지식 체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윌슨의 통섭을 지탱해 주는 것은 바로 ㉠ 환원주의이다. 이는 복잡한 대상을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를 밝히려는 노력으로, 윌슨은 모든 존재의 근본적 요소는 관찰과 실험을 통한 자연과학적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 역시 자연 과학으로 환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문학은 자연과학으로 완벽히 포섭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체의 운동을 물체와 땅 사이의 마찰력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사랑이나 사회조직의 작동을 호르몬이나 유전자와 같은 자연 과학적 법칙에 의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윌슨의 주장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동시에 ㉡ 인문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대상과 자연과학의 대상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음 을 지적하며 통섭이 불가능함을 설명한다. 인간은 자연물과 달리 자연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시에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체의 낙하는 중력이라는 자연과학적 법칙으로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번지 점프와 같은 인간의 낙하는 중력보다는 신체 단련이나 즐거움 등 개인의 특별한 목적이 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탐구하는 대상의 본질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파악되는 객관적 실체가 아님을 지적한다.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은 물리적 현상처럼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가 어렵고,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대상 인식 방법인 관찰과 실험은 인문학에서는 대상의 본질을 연구하는 충분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인문학자들은 관찰 주체가 지닌 관점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인식될 수 있으며, 관찰자의 관점이 배제된 객관적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처럼 자연과학과 명백한 경계선을 갖는 인문학적 관점이 윌슨의 생각처럼 자연과학으로 완전히 포섭되기란 어렵다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주장이다.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인문학 적 지식과 자연과학적 지식이 소통하여야 한다는 윌슨의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그 소통의 방법이 통일된 지식 체계를 세우는 것이라면 이는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문 간의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인문학의 고유한 정체성은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출전) 이인식, 「통섭과 지적 사기」(재구성)





이해를 돕는 문항


28.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공통점을 밝혀 내려는 이론이다.

②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은 쉽게 변화한다는 인식이다.

③ 대상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다.

④ 모든 대상을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태도이다.[각주:1]

⑤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29. 윌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적절한 것은?

① 인간의 정서적 작용은 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임이 밝혀지고 있다.[각주:2]

② IT 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속 가상공간과 현실 세계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③ 동물이 개체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유전자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④ 자동 번역 시스템이 고안되어 서로 다른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다.

⑤ 인지심리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행동에 관여하는 다양한 심리학적 동기가 밝혀지고 있다.



30. ㉡의 관점에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적절한 것은? [3점]

<보기> 

그림 속 화가는 눈앞에 앉은 모델과는 무관한 낙서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화가가 스케치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비밀은 모델의 동작에 있다. 모델은 뜨개질을 하면서 뜨개바늘을 앞뒤로 움직이고 실타래를 매만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동작을 보이는데, 화가는 바로 모델의 동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① 화가의 스케치는 모델을 물리적 현상처럼 관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② 화가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델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각주:3]

③ 화가는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델의 객관적 실체를 대상의 본질로 인식한다.

④ 화가가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주관이 배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⑤ 화가의 스케치는 대상의 본질과 무관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1. ‘환원주의’는 통섭의 전제로 인문학이 자연과학으로 포섭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이끌어낸다. 곧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자연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현상을 이해하려는 태도라 할수 있다. [본문으로]
  2. 2문단에서 윌슨은 자연과학으로 인문학을 포섭하는 통섭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인문학의 하나인 심리학 의문제를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사례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그림 속 화가는 모델을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모델의 형상이 아닌 모델의 동선에 있다. 이처럼 관찰의 결과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그림 속 화가의 태도는 인문학자들의 대상 인식과 닮은 점이 있다.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은 인문학적 대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