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미국의 포스트 모던 철학과 예일 학파를 대표하는 해체주의 철학자. (1930-2004)



독일의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이 말하는 ‘의식 주체’는 서양 근대 철학의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후설에 의하면 의식 주체는 다른 것의 도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 즉 현존하는 것이며, 사유의 대상인 객체에 비해 우월하며 본질적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의식 주체인 정신은 곧 ‘나’의 본질로, 그 자체로 완전하고 절대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기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 간주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이원 대립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주체와 객체가 우열 관계 내지 착취 관계에 있다고 보아 객체에 대한 주체의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체 개념의 정립이 17, 18세기 자본주의의 소유 이론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원 대립과 위계의 가치 질서를 만들어 낸 후설의 의식 주체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 개진한다. ‘차연’을 뜻하는 신조어 ‘디페랑스(différance)’는 ‘차이(差異)’와 ‘연기(延期)’의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어떤 단어(A)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단어(B)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단어의 의미는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단어와의 차이에 의해 그 의미가 ㉢ 구별되면서 끊임없이 연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리다에게 주체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들과의 차이에 의해 의미가 드러나고 그 의미에 대한 최종 해석은 계속 연기되는 것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은 단순히 의식 주체에 대한 대립 개념이 아니라, 의식 주체의 절대적 위상 속에 ㉣ 은폐되어 있는 객체의 가치를 밝히는 새로운 개념이다. 데리다가 의식 주체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형이상학적 전통 철학에서는 주체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을 은폐하고 그 자체로 고정 불변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믿음으로 인해 형이상학적 전통 철학은 차이와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절대 주체를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욕망을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연 개념을 통해 데리다가 주장하는 바는 자기 동일성을 지닌 주체란 허구이자 환상에 불과하므로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주체의 부재를 확인하고, 주체는 다른 것들과의 차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자기 동일성을 지닌 우월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데리다는 그 어느 것에도 특권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형이상학적 전통 철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절대적 진리의 ‘있음’을 ‘없음’으로 ㉤ 대체했다. 그의 사상은 대상마다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다원적 사고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출전) 윤효녕 외, ‘주체 개념의 비판’





이해를 돕는 문항


16. 윗글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정신에 대한 후설의 인식 

② 데리다의 사상이 갖는 의의 

③ 의식 주체 개념이 지닌 문제점 

④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의 정립 계기[각주:1]

⑤ 주체의 자기 동일성에 대한 데리다의 견해



18. 데리다의 관점에서 <보기>에 대해 평가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식민주의란 약육강식을 근간으로 삼는 차별적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힘이 센 나라(종주국)가 자신보다 약한 나라(식민국)를 무력으로 침략하여 물적 · 인적 자원을 약탈하고, 그 곳을 지배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서양 근대 철학은 이러한 식민주의의 이념적 뒷받침이 되었다.

① 식민국이 스스로 열등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 식민주의를 해체할 수 있겠군.[각주:2]

② 종주국은 식민국과 대등하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겠군.

③ 식민주의는 종주국을 절대적 주체로 설정하면서 식민국의 가치를 은폐하려는 이데올로기이군.

④ 종주국의 무력 침략은 종주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려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

⑤ 식민주의의 문제는 상대적 차이를 지닌 나라들의 관계를 위계질서를 지닌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겠군.


  1. 1문단에는 후설의 의식 주체가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이, 3문단에는 주체에 관한 형이상학적 철학의 입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을 계기로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이 정립되었는지는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없다. [본문으로]
  2. 식민주의는 세계를 이원 대립적 구도로 파악하여 종주국과 식민국이 우열 관계에 있다고 보는데 데리다는 이러한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란 종주국 의 절대적 지위라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각 나라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①에 나타난 것처럼 식민국이 열등성을 지녔다고 전제하는 것은 이원 대립과 위계의 가치 질서에 입각한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이지 데리다의 견해라 할 수 없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기>의 식민주의는 상대적인 차이만 지니는 두 나라를 우열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민주의를 해체하려면 두 나라의 상대적인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