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사상계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사상에 ⓐ 경도되어 유학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한 맹자(孟子)는 유학의 수호자를 자임하면서 공자(孔子)의 사상 을 계승하는 한편, 다른 학파의 사상적 도전에 맞서 유학 사상의 이론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그는 공자의 춘추 시대(春秋時 代)에 비해 사회 혼란이 ⓑ 가중되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사회 안정을 위해 특히 ‘의(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맹자가 강조한 ‘의’는 공자가 제시한 ‘의’에 대한 견해를 강화한 것이었다. 공자는 사회 혼란을 치유하는 방법을 ‘인(仁)’의 실천에서 찾고, ‘인’의 실현에 필요한 객관 규범으로서 ‘의’를 제시하였다. 공자가 ‘인’을 강조한 이유는 자연스러운 도덕 감정인 ‘인’을 사회 전체로 확산했을 때 비로소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 공자는 ‘의’를 ‘인’의 실천에 필요한 합리적 기준으로서 ‘정당함’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맹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혈연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도덕 감정인 ‘인’의 확산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도, ‘의’의 의미를 확장하여 ‘의’를 ‘인’과 대등한 지위로 격상하였다. 그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인’이고, 형을 공경하는 것은 ‘의’라고 하여 ‘의’를 가족 성원 간에도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나의 형을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남의 어른을 공경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유비적 확장을 통해 ‘의’를 사회 일반의 행위 규범으로 정립하였다. 나아가 그는 ‘의’를 개인의 완성 및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위해 필수적인 행위 규범으로 설 정하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인은 ‘의’를 실천하여 사회 질서 수립과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맹자는 ‘의’가 이익의 추구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사적인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이익의 추구는 개인적으로는 ‘의’의 실천을 가로막고, 사회적으로 는 혼란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특히 작은 이익이건 천하의 큰 이익이건 ‘의’에 앞서 이익을 내세우면 천하는 필연적으로 상하 질서의 문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회 안정을 위해 사적인 욕망과 ⓒ 결부된 이익의 추구는 ‘의’에서 ⓓ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맹자는 ‘의’의 실현을 위해 인간에게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와 능력이 있음을 밝히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 행위를 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선천적으로 내면에 갖춰져 있다는 일종의 ㉠ 도덕 내재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은 자기의 행동이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본래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마음이 의롭지 못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동기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모든 인간의 마음에 갖춰져 있다고 하여 ‘의’를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역량이 내재화되어 있음을 제시하였다.


맹자는 ‘의’의 실천을 위한 근거와 능력이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제시한 바탕 위에서, 이 도덕적 마음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 역설하였다. 그는 본래 갖추고 있는 선한 마음의 확충과 더불어 욕망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특히 생활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일에서도 ‘의’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는 목숨과 ‘의’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라고 주장하여 ‘의’를 목숨을 버리더라도 실천해야 할 가치로 부각하였다.


― 맹자의 ‘의’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