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다고 가정해 보자. 제2음이 울릴 때 직전에 제1음이 울렸던 순간은 과거일까? 현재일까? 이에 대해 과학적 시간관에서는 현재는 과거나 미래와 단절된 점(點)과 같은 순간이므로 과거라고 답할 것이다. 반면 체험적 시간관에서는 ‘현재의 지평’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현재라고 답한다.


체험적 시간관을 확립한 후설(Husserl)에 따르면 현재가 ‘파지-원인상-예지’라는 지평을 갖게 됨으로써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이 함께 생생하게 지각되는데, 이를 '현재화’ 작용'이라고 한다. 원인상은 음을 듣는 것처럼 대상을 지각하는 순간에 의식된 근원적 인상을 말한다. 그런데 제2음을 듣는 순간 직전에 들은 제1음은 변양된 형태로 여전히 의식 속에 남아 있다. 이처럼 원인상을 의식 속에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파지이다. 또한 제2음을 들을 때 아직 듣지 않은 음을 예측하듯이 원인상을 바탕으로 미래를 즉각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예지이다. 예지는 충족될 수도, 어긋날 수도 있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로 다시 당겨지고 미래가 현재로 미리 당겨지면서 현재의 지평이 형성된다. 따라서 제2음을 들을 때 제1음이 들렸던 순간도 현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지평 형성에는 ‘현전화’ 작용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화가 자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현전화는 자아의 능동적 작용으로 일어난다. 현전화에는 우선 회상이 있다. 파지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에서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사라진 것을 현재에 불러오는 것이 회상이다. 또한 미래의 일을 현재에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를 기대라고 한다. 현전화는 현재화를 기반으로 일어나며, 현재화와 융합되어 현재의 지평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화가 원인상과의 감각적 연속성이 있는 것과 달리, 현전화는 원인상과의 감각적 연속성이 없어 생생함이 사라진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가 유기체처럼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개인의 관심이나 주의력에 따라 파지와 예지, 회상과 기대의 정도가 달라져 현재의 지평도 변한다. 예컨대 프로듀서가 휴양지에서 휴식을 위해 음악을 들을 때보다 음반 출시를 위해 음악을 들을 때 현재의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다. 또한 현재화는 현재의 지평에 대한 통일적 인상을 변화시킨다. 제1, 2음을 들으며 제3음의 높낮이를 예측할 때, 그 세 음들에 대한 나름의 통일적 인상을 갖는다. 그런데 예측하지 않은 제3음이 들려 예지가 충족되지 못하면 제1, 2, 3음에 대한 이전의 인상도 달라져, 그 세 음들에 대한 통일적 인상도 다른 양상으로 변하게 된다.


체험적 시간관을 통해 인간은 항상 경험을 통일성 있는 구조로 파악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정된 사물을 보거나 ‘삑’ 하는 소리를 들을 때조차 그 순간만을 지각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함께 지각하거나 회상과 기대를 함으로써 그 대상과 관련한 스토리를 만들려 하는 인간의 속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 (출전) 에드문트 후설, 「시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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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문항


19. 윗글의 ‘후설’이 <보기>의 ‘브렌타노’에게 할 수 있는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브렌타노는 직전에 지각한 것이 사라지더라도 적극적인 상상을 통해 그것에 대한 이미지가 변양된 상태로 떠오르는데, 이는 지각이 아니라고 말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직전에 본 장면을 여전히 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이는 상상의 생생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가상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① 직전에 본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상상이 아니고 지각입니다.

② 직전에 본 장면을 떠올릴 때는 변양이 없이 기억하게 됩니다.[각주:1]

③ 지각한 것이 한번 사라지고 나면 다시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각주:2]

④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은 능동적인 노력 없이도 가능합니다.[각주:3]

⑤ 시간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근원적 연상은 생생할 수 없습니다.[각주:4]

  1. 후설은 파지를 통해 과거에 있던 장면을 의식 속에 붙들고 있는데, 이때 의식적 변양이 일어난다고 본다. 따라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
  2. 후설은 지각한 것이 사라지더라도 파지를 통해 의식 속에 붙들고 있고, 회상을통해 떠올릴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
  3. 후설은 과거에 대한 회상은 능동적인 작용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따라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
  4. 후설은 시간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지평을 이룬다고 보았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