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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 시대에 인간이 마음의 평정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인간은 신을 위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진리를 찾으려는 학문의 목적 역시 신의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명증한 진리는 없어 보인다며 진리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고대 회의주의 철학인 피론주의(Pyrrhonism)가 새롭게 관심을 받게 되면서 신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게 된다.


ⓐ 피론주의자들은 인간들이 진리를 찾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진리를 찾았거나, 진리가 없다고 포기하거나, 계속해서 진리를 찾는’ 세 가지 경우라고 한정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친 독단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계속해서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진리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진리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피론주의자들의 주장은 모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떤 명제(p)와 그 명제의 부정(~ p)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참이라는 배중률을 고려하면 p와 ~ p 중 하나는 참이라는 점에서 진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피론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짓이 된다. 또한 피론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 주장 자체가 참이 되어, 적어도 1개 이상의 참인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피론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짓이 된다.


그렇다면 왜 피론주의자들은 진리를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을까? 그들은 어떤 명제가 참인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의심할 바 없이 뚜렷하게 증명되는 명증성을 지녀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양한 명제들을 상충 또는 대립시켜 명증성을 확인하려고 하였고, 지속적으로 진리를 의심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러 명제들은 대립되고 모순되기 때문에 어느 쪽도 다른 명제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으므로, 어떤 명제도 명증성을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회의적 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 진리는 없어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피론주의자들은 이처럼 진리를 판단할 수 없는 판단중지 상태를 에포케라고 일컬었다. 에포케는 어떤 명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로 그들은 진리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면, 진리를 얻기 위한 고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 상태인 아타락시아가 오게 된다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 시대에는 마음의 평정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론주의로 인해 인간 스스로에 의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이는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인간이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은 고대 피론주의의 진리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 깊이 있게 인간의 인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근대 철학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 (출전) 서양근대철학회, <서양 근대 철학의 열 가지 쟁점>

   




참고 문항


38. <보기>는 ⓑ[각주:1]에 대한 설명이다. ⓐ[각주:2]와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확실성을 가진 ‘기초적 믿음’을 찾기 위해 진리에 대해 의심해 보는 회의적 사고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찾은 기초적 믿음 은 사유하는 존재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것으로 다른 진리 추구의 토대가 되었다.


① 배중률을 통해 진리를 증명하였다.

② 기초적 믿음이 신의 질서라고 여겼다.

③ 사유의 과정에서 의심의 방법을 사용하였다.[각주:3]

④ 진리는 존재하지만 파악될 수 없다고 인식하였다.

⑤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며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 데카르트. [본문으로]
  2. 피론주의자들. [본문으로]
  3. ⓐ는 지속적으로 진리를 의심하였고, ⓑ는 의심할 수 없는 기초적 믿음을 찾기 위해 회의적 사고를 하였으므로 공통적으로 사유의 과정에서 의심의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