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 줄거리] 시골 소농의 아들로 자란 방태흥은 상경하여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고생 끝에 6년 만에 자신의 집을 짓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이 전무가 찾아와 방 씨의 집이 자신의 집을 침범했다며 방 씨의 집 벽을 허물라고 요구한다. 이 전무와 방 씨는 다시 만났지만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다가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아저씨, 옆집에서 찾아요.”


식모아이가 볼멘소리로 투덜대며 들어왔다.


“㉠ 자기가 무슨 높은 양반이라구 오라 가라 야단이람.”


“누가 찾는다구?” 


“옆집에서요. 뭐 잠깐 왔다 가라나요? 아저씨, 구멍가게 집 아주머니가 그러는데요, 그 집 순 무식한 벼락부자 집안이래요.” 


“벼락부자?” 


“그 남자가 전에는 말예요, 지금은 사장인 자기 형이랑 가짜 구리무를 집에서 만들었대요.”


옆에서 아내까지 거들었다.


“나두 들었어요. 외제 빈 갑에다 담아갖구선 집집으로 다니면서 팔았대요. ㉡ 국민학교두 못 나온 일자무식이라지 뭐예요.”


“잘 모르는 남의 일을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쩨쩨하구 치사한 집안이에요. 오라, 가라…… 아저씨, 제가 가서 그 남자보구 일루 오라구 그럴까요?” 


“아냐, 내가 가지.”


“축 잡힐 노릇 하시지 말구, 저앨 시켜서 부르세요.”


몸이 무거워 아랫목에 누워 있던 아내도 말했지만 방선생은 못 들은 체해버렸다.


이전무는 초저녁부터 파자마 바람이었다. 그는 백과사전 같아 보이는 두툼한 책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뒤적이다가 한참 만에 방 선생이 담배 한대를 붙여물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쇼. 밀린 공부를 하다보니 이거 실례했소이다. 대학원엘 갈려고 준비중인데……”


“어떻게 결정하셨나요.”


“요즘 세상에 까짓 석사학위쯤야 그게 학윈가. 대학은 말할 필요두 없구.”


“결정은 하셨습니까?”


옆집 남자가 멀뚱해진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무슨 결정 말요?” 


“우리 쪽에서 담을 쌓아드리겠단 조건을 수락하는 겁니까?” 


그자는 책장을 탁 덮고 뒤로 치웠다. 그러곤 공연히 귀만 후벼파면서 말했다.


“글쎄 그게 곤란하군요. 이 집이 내 집이라면야 그걸로 일단락을 짓겠지만 회사 집이란 말입니다.”


집안이 소란스러워지고 짜증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통에 이전무의 말은 끊겨졌다.


“없다는데두 부득부득 지랄야, 지랄이. 너 줄 찬밥이 어딨니? 못 가 냉큼?” 


“에, 밥 없으면 돈이라두 줘요, 씨.”


이전무가 미닫이를 열고 시끄러워, 하며 고함을 쳤다. 투정하는 소리도 더욱 커졌다.


“씨, 안 주면 가나봐라, 좀 줘요.”


“시끄럽다니까. 아, 빨리 못 쫓아내?” 


이전무가 미닫이를 힘껏 닫고 나서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우리 회사서는 말이오. 허물지 않으려면 손해 배상을 내라 이거요.”


대문을 발길로 내지르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이전무가 벌떡 일 어섰다.


“이런 쌍눔의 새끼를……”


방태흥씨가 호주머니를 뒤적여 십원짜리 한장을 꺼냈다. 이전무는 매우 요긴한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돈을 덥석 받아쥐었다.


“거 마침 잘됐군, 잘됐어.”


이전무가 방문 밖으로 돈을 내주며 빨리 쫓아버리라고 외쳤다. 불안해서 당황하는 듯 보였던 그자의 얼굴은 포마드로 빗어붙인 머리털과 매한가지로 빠듯하고 정돈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방선생이 말했다.


“손해 배상이라면 얼마쯤이나……?” 


“십만원이오. 집을 버려놓은 꼴루 봐서라두 꼭 알맞은 금액이라 생각하는데.”


“너무 많습니다.”


방선생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능력이 없다는 건 둘째로 치고 부당하군요.”


“그럴 줄 알았시다. 못 내겠다면 구청장을 상대로 고소하겠다 이거요. 아마 고소장을 냈을걸. 댁은 물론이고 건축 허가를 내준 과장부터 구청장까지 모조리 걸린단 말요.”


“고소장을 냈어요?” 


“냈지만…… 댁에서 손해 배상금을 지불하겠다면 당장이라도 취하시킬 수 있소. 오늘 이게 마지막 타협이란 걸 잘 알아두쇼.” 


“십만원이란 부당합니다. 말씀드렸지만, 말썽난 쪽의 담만을 쌓아 드린다는 조건이…… ㉢ 저로서는 최대의 성의입니다.” 


이전무가 심각해진 인상을 하고서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비죽이 내밀고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던 이전무가 말했다.


“오만원 내시오.”


방태흥씨도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는데 담을 쌓아주려면 아무래도 최소한 삼만원쯤은 먹힐 것 같았다. 물론 남아 있는 벽돌은 묵혀버릴 작정을 했고 생돈을 들일 각오를 하고서였다. 눈 딱 감고 옜다 먹어라 하고 이만원을 더 얹어주고 나면 이 지겹고 고통스러운 이웃간의 다툼은 끝날 거였다. 방선생이 말했다.


“㉣ 그쯤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면서도 방씨는 우선 아득한 근심이 앞섰다. 이전무가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만원짜리 약속어음을 십이월 말까지로 써주시오.”


“나머지라뇨? 약속어음은 빚이나 마찬가진데요.”


“그야 기분문제루 쓰자는 거 아니겠소? 지내노라면 나중에 가서 받게 되겠습니까. 이웃 사촌이라잖소.”


“이웃 사촌……”


“자, 그럼 얘긴 끝난 모양이군.”


“약속어음은 못 쓰겠군요.”


방선생은 맥없이 고개를 저었고, ㉤ 이전무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댁과는 타협이 여엉 안되는구만. 우리네도 좋을 대루 하겠소.”


두 사람의 타협은 그것으로 완전히 결렬되었다. 그날은 어찌나 피로한 날이었던지 머리카락 꼬리 부근에 작은 종기가 생겨나 방태흥씨는 목을 움직이기가 거북했다. 작았던 멍울이 밤톨만한 뾰루지가 되어 끝이 노랗게 곪아 있었다. 손거울로 비춰보니 그 옆과 아래쪽에도 종처가 지나간 흔적이 흑색 딱지나 반점으로 남아 있었는데 방씨는 자기가 몹시 빈곤하고 천한 태생이란 느낌이 들었다. 종기 자국들은 자질구레하고 사소했던 여러가지의 피해로써 맺혀진 듯이 보였다. 약솜을 쥐고 뾰루지를 비틀어 누르기 시작했 다. 고통이 뇌수 속을 깊이 찌르는 듯하다가 눈가에 눈물이 되어 가득히 고였다. 잠시 후 고통이 일시에 가셨지만 물범벅이 된 눈꺼 풀을 껌벅이며 그는 멋쩍은 심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깨알만 한 고름 구멍을 보노라니까 자기는 그 아픔과 상처보다도 훨씬 미세한 존재인 것만 같았다.


― 황석영, 「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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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대화를 통해 인물의 분열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② 과거를 회상하여 인물들의 관계가 변화된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외부 이야기 속에 내부 이야기를 삽입[각주:1]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현학적 표현[각주:2]을 통해 사건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⑤ 작품 밖의 서술자가 특정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각주:3]



35. ㉠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 자신을 무시하는 방 씨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② ㉡: 이 전무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③ ㉢: 이 전무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는 태도가 드러난다.[각주:4]

④ ㉣: 이 전무의 입장을 모두 수용한 후에 느끼는 안도감이 드러난다. 

⑤ ㉤: 자신의 요구가 과도했음을 인정하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36.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작품은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물질적 이해관계가 중시되어 가던 1970년대 무렵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즉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보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되고, 사소한 갈등조차도 공동체의 관습이나 인정보다는 법을 내세워 해결하려는 변화된 시대상이 나타난다. 이 작품에는 이러한 현실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갈등 속에서 얻게 된 상처를 통해 자신의 소시민적 모습을 인식하게 된다.


① 이 전무가 ‘가짜 구리무’를 만들어 ‘외제 빈 갑’에 담아 팔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군.

② 방 씨가 ‘손해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하기 위해 ‘고소장’을 언급하는 이 전무의 모습에서 법을 내세워 갈등을 해결하려는 세태를 볼 수 있겠군.

③ 이 전무가 ‘이웃 사촌’이라고 한 말을 되뇌는 방 씨의 모습을 통해 그가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군.[각주:5]

④ ‘두 사람의 타협’이 ‘완전히 결렬’된 것은 물질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당시의 세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

⑤ 방 씨가 ‘깨알만한 고름 구멍’을 보며 자신을 ‘미세한 존재’로 느끼는 것은 그가 이 전무와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소시민적 모습을 인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

  1.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학 개념. [본문으로]
  2.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학 개념어. [본문으로]
  3. ‘방태흥씨도 ~ 끝날 거였다.’, ‘그날은 ~ 훨씬 미세한 존재인 것만 같았다.’등을 볼 때 작품 외부의 서술 자가 방 씨와 이 전무의 갈등을 주로 방 씨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이 전무가 제시한 조건에 대해 ‘십만 원이란 부당합니다.’라고 한 방 씨의 대답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하는 편집자 의견) 이렇듯, 행동이나 대화에 담긴 인물의 심리는 그 주변(위, 아래)을 보아야 알 수 있다. [본문으로]
  5. (편집자의 직접 해설) 우선, <보기>에 있는 단어는 '대응'으로 '적응'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더욱이, 방 씨와 대립하고 있는 이 전무의 세계는 적응할 가치가 없는 세계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