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29. 현의 집 

현을 끌고 오는 고 영감. 끌려오며 무어라고 잘못했다고 비는 현. 마당에 나뭇가지를 말리던 현 모 의아해 일어난다. 


고 영감 : (들어서며 대뜸) 너 야 앞에서 똑똑히 말하거라. 현이 애비가 왜 죽었느냐?


현 모 : 무슨 말씀이신지 전…….


고 영감 : 그게 훌륭한 죽음여? 그래서 철없는 자식헌티도 애비처럼 죽으라구 부추기는 거여?


현 모 : 아버님 고정하시고…….


고 영감 : 그 따위로 자식을 키우려거든 당장 오늘이라도 현인 내가 데려가서 키울란다.


현 : 싫어. (할아버지 손을 탁 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현 모 : ……. 제가 잘못했습니다. 허지만 현이 아버지 죽음을 못난 죽음이라고는 말어 주세요.


고 영감 : (조금 누그러지며) 지금 세상에 똑똑헌 놈 잘 되는 것 없어. 남이야 뭐라던 그저 죽어지내는 게 절 보존하는 거여……. 너도 명심허고 애를 그렇게 키워.



(중략)



S# 36. 교정

현이 가방 들고 나온다. 문득 멈춘다. 학교 직원실 건물 쪽에서 한 떼의 학생들. 창백한 얼굴, 도수 높은 근시 안경의 M 선생을 고등계 형사 두 명이 연행해 가고 있다. 학생들이 수군거린다.


E[각주:1] : 어떻게 된 거야?


E : 모종의 독서회를 열었고, 학생들에게 독립 사상을 주입시킨 혐의래.


태연히 냉소마저 머금고 지나치는 M 선생. 현과도 시선이 마주친다. 이상하게 흠칫 뒤로 물러서는 현. 


M 선생 : 공부를 잘해라.


지나치며 한마디 한다. 착잡한 시선으로 뒷모습 바라보는 현. 다시 교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어이, 현아.” 저쪽 나무 그늘 아래 또 한 떼 웅성대던 학생들 중에 연호가 부른다. 


현 : 연호, 너 안 갈래?


연호 : 잠깐 와 봐.


그쪽으로 가는 현. 그쪽의 학생들 얼굴이 왠지 긴장해 있다. 그들 현을 자세히 본다. 약간 굳어지는 현.


민영 : (나서며) 현은 우리의 뜻을 알 거다.


현 : (어리둥절) 무슨 뜻?


민영 : 현의 아버지는 삼일 혁명 당시 훌륭한 죽음을 하셨으니까…….


현 : (흠칫. 무슨 뜻인지 안다.) …….


민영 : ……. 아침에도 오 학년 학생 둘이 끌려갔어……. 또 끌려갈 거야……. 하지만 우리는 중단할 수 없어.


현 : (주저) …….


민영 : 잡혀간 철웅이 아버님이 주재소로 끌려가 매를 맞고 돌아와서 돌아가셨대……. ㉣ 너의 아버진 우리의 우상이야. 너도 우리와 뜻을 같이해 주어.


현 : (입술이 탄다.) …….


연호 : (두둔하며) 현은 말 안 해도 우리의 뜻을 알아.


현 : (당황) 아니 그보다…….


민영 : 그보다 뭐야?


현 : ……. 우리가 비밀 운동이나 조직한다구 무어가 달라질까? 


민영 : 뭐?


현 : 글쎄……. 우리들 힘이나 잡혀간 M 선생님의 힘으로 뭐가 거대한 것이 달라질까 말이야…….


민영 : (발끈)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수동적이어야만 하니. 


현 : (우물쭈물) 글쎄……. 난 당장 해야 할 숙제나 시험만 해도 과중해서…….


일순 굳어지는 야릇한 공기. 


현 : 미안해…….


돌아서 간다.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


민영 : 비겁한 자식. (움찔 멈춰 서는 현.)


연호 : (변명하며) 아냐. ㉤ 현이는 홀어머니 때문에 가볍게 움직일 수 없어.



― 선우휘 원작, 이은성ㆍ윤삼육 각색, 「불꽃」


선우휘.


  1. E : 효과음(effect). 화면에 삽입된 음향.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