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노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욱 심한 손해를 보았다. <원지본위>란 환지[각주:1] 원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송노인의 경우는 도합 천오백열 평 중 원지로 받은 것은 불과 사백 평 뿐이고 나머지 천백열 평은 말도 안 되는 박토──산을 깎은 개간지를 환지로서 받았던 것이다.


㉠ “죽일 놈들!”


송노인의 입에서는 또 이런 말이 나왔다. 환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불평을 했다. 마을 환지위원들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진흥공사의 ××사업소 사람들도 그러고 그랬으리란 소문도 나돌았다. 이런 소문들이 맹탕 거짓말이 아니란 것은, 가령 마을 환지위원들 가운데는 그런 억울한 변을 당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과 또 환지위원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덕을 본 셈이라는 얘기들을 미루어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당한 환지를 받은 사람은 모두 같은 기분들이었지만 그런 뜻을 모아서 어떻게 해 보자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오리엔탈 골프장>의 경우와는 달라서 이건 바로 정부에 서 한 일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들이었다. 말하자면 다루기 쉬운 백성들로 잘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망했다, 망했어!”


송노인의 불평은 한 계단 더 비약했다. 그는 자기에게 내려진 부당한 처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늙은 몸으로 두 달을 계속 관계요로에 <부당 환지의 시정>을 호소하고 다녔다. 새어 나온 그의 유서 내용에 의하면 마을 환지위원장인 이성복 동장에게는 무려 15회, 농업진흥공사 ××사업소에는 6회나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 시종일관 묵살을 당하고만 셈이니까.


게다가 고속도로가 통하면 사람 왕래도 많아져서 송노인의 집에서는 가게도 차릴 수 있을 것이란 메기입 이성복 동장의 말도 턱도 아닌 헛나발이 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다니는 차들은 아무데나 설 수도 없고 또 고속도로는 함부로 건너갈 수도 없다는 것을 시골 사람들은 길이 통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바로 길 너멋 논에 두엄을 내는 사람들도 먼 굴다리 쪽을 일부러 돌아야만 되었다.


“제-기, 이기 무슨 지랄고!”


짐이 무거울수록 그들의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왔다.


길에서 집이 가까운 송노인의 경우는 은근히 희망을 걸어보던 가게를 내긴커녕 지나가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과 먼지 때문에 도리어 역정만 늘어날 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행 여 구멍가게라도 될까싶어 일부러 길 쪽으로 내 보았던 마루방도 이내 문을 닫아걸었다. 길 쪽 창유리가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먼지로 인해 마치 매가릿간의 그것처럼 뿌옇게 되어 버렸다.


㉡ “망했다. 망했어!”


[중략 부분의 줄거리] 마을의 농토는 공장부지 조성 등의 명목으로 자본가들에게 넘어간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벼운 농담이나 하는 마을 젊은이들과 송노인은 갈등하게 된다.


“비꼬지 마이소.”


이번에는 메기입의 친구요 역시 마을 환지위원의 한 사람인 상출이란 청년이 불쑥 나섰다.


“영감님이 젊었을 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했다고 툭하면 젊었을 때는──하고 나서는기요? 농민조합에 들어가서 경찰서 때리부수는 일에 가담했다는 것밖에 더 있소?” 


청년회장까지 겸하고 있는 만큼 비교적 머리가 영리하고 옛날 일도 제법 알고 있는 편이다. 안다는 놈이 그러니 송영감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농민조합에 가담한 기 그렇게 나뿐 일인가?” 


“농민조합은 빨갱이 단체 아니오?” 


상출이는 숫제 위협 비슷하게 나왔다. 송노인은 드디어 부아통이 터지고 말았다.


“머 빨갱이 단체? 이놈들이 몬하는 말이 없구나. 그래 왜놈의 경찰이 우리 경찰이더냐? 일제 때 고자질이나 하고 헌병 앞잽이나 돼서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쏘아 죽이고 하던 놈들이 요새 와서는 자긴 반공 투쟁을 했을 뿐이라고 도리어 큰소릴 치고 돌아다닌다 카디이, ㉢ 바로 느그가 생사람 잡을 소릴 하는구나. 어데 그 소리 한 번 더 해 봐라!”


송노인은 뼈만 남은 팔을 걷어 올렸다. 금방 칼이나 창 구실을 할는지도 모를 그런 팔이었다.


“영감님 참으이소. 장난으로 한 소리 아잉기요.”


송노인의 성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메기입이 얼른 사이에 들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 “아나, 이놈아 어서 파출소에 가서 신고나 해라! 송기호는 늙은 빨갱이라고── .”


송노인은 상출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 주려다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송노인의 그러한 감정은 비단 상출이에게만이 아니라 아무런 주견도 패기도 없으면서 그래도 마을 의 무슨 대표인 체하고 우쭐거리는 젊은 치 전체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세대교체의 탓인지도 모르되 옛날과 달라서 요즘은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어른들은 다 뒤로 물러앉고 그런 젊은 치들이 마을 일을 도맡듯 해서 옳든 그르든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용춤을 추고 있는 판국이라고 송노인은 생각했다. 환지문제 기타 로 인해 송노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노인네들은 그저 “세상이 그런 걸 머!” 할 뿐 드러내 놓고 말을 잘 안 했다.── 요컨대 아직은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않더라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틈이 생기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멍청한 얼굴들에 나타나게 마련인 씁쓸한 웃음들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 ‘철딱서니 없는 놈들…….’


― 김정한, 「어떤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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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는 문항들


21. 윗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외부의 이야기에 내부의 이야기가 삽입[각주:2]되어 있다.

② 다양한 인물들의 경험을 삽화 형식[각주:3]으로 나열하고 있다.

③ 인물의 회상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여 교차하고 있다. 

④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장면을 병렬적으로 제시[각주:4]하고 있다. 

이야기 밖의 서술자가 특정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전개[각주:5]하고 있다.[각주:6]



23.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이 작품은 1970년대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권력자들에게 토지를 침탈당하는 농민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가해자 편에 서 있는 중간자가 개입되어 있다. 또한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농민들은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무기력한 태도로 방관하거나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며 분열되는 등 파편화된 모습을 보인다.


① ‘정부에서 한 일’로 인해 ‘부당한 환지를 받은’ 것은 권력자들에 의해 토지를 침탈당한 농민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군.

② 송노인에게 ‘가게도 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점에서 이성복 동장은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개발에 동조하고 있는 중간자라고 할 수 있겠군.

③ ‘먼 굴다리 쪽을 일부러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농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각주:7]

④ ‘세상이 그런 걸 머!’라고 체념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 대해 무기력한 태도로 방관하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

⑤ 마을 사람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틈이 생기고 있는’ 모습을 통해 파편화되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

  1. * 환지: 토지를 서로 바꿈. 또는 바꾼 땅. 환토(換土) [본문으로]
  2. 중요한 문학 개념어.(밑줄은 편집자가 친 것임.) [본문으로]
  3. 중요한 문학 개념어.(밑줄은 편집자가 친 것임.) [본문으로]
  4. 중요한 문학 개념어.(밑줄은 편집자가 친 것임.) [본문으로]
  5. 중요한 문학 개념어.(밑줄은 편집자가 친 것임.) [본문으로]
  6. 이 글은 이야기 밖의 서술자가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데, ‘송노인의 불평은 한 계단 더 비약했다. 그는 자기에게 내려진 부당한 처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송노인은 상출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려다 그대로 돌아섰다. ~ 송노인은 생각했다.’ 등을 볼 때 서술자가 주로 송노인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으므로 적절하다. [본문으로]
  7. ‘먼 굴다리 쪽을 일부러 돌아’가는 모습은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고 불편을 겪는 농민들의 상황을 드러낸 것이지,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으로 볼 수 없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