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을 읽고 그림 속 실어증 환자에 대한 설명을 맞히는 문제에서 제시되었던 그림.


IQ가 70이 채 안 되는 13살 소년 A는 혼자서 옷의 단추도 채우지 못하고 손톱도 깎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어, 이탈리아 어, 스페인 어, 그리스 어, 터키 어 등 20여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이들 외국어로 쓰인 글을 자국어인 영어로 손쉽게 번역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언어 능력이 다른 인지 능력과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능력이라는 촘스키의 가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두 가지 유형의 실어증 환자에 대해 살펴보면, 인간의 좌뇌에 언어를 담당하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언어 능력이 여타의 인지 능력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음을 말해 준다. 


실어증 환자 중에는 억양이나 발음이 정상적이어서 얼핏 듣기에는 매우 유창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휘를 잘못 사용하거나 종종 의미 없는 어휘들을 사용하는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가 있다. 이런 환자의 또 다른 특징은 문법적으로 비교적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특이하게도 (   ㉠   )는 것이다. 이 유형의 환자들은 1874년 칼 베르니케의 논문에서 처음 보고되었는데, 이들은 좌뇌의 뒷부분(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는 일상적인 간단한 명사를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물’이란 말 대신에 ‘마시는 것’, 또 ‘코’ 대신에 ‘냄새를 맡는 곳’이라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에게 물고기 그림을 보여 주고 무엇인지 말하도록 실험을 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것이 뭔지 알지만 말할 수가 없군요. 그건 물속에 있고, 그걸 잡는 건 재미있죠. 휴가에 말이죠. 그건 동물은 아니지만 동물에 가깝지요. 먹기도 좋구요. 그건 게지요, 아니 아니 게에 가깝기는 한데, 물괴기인가, 맞아요 물고기! 바로 그거예요.”


실어증 환자 중에는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어를 의미에 맞게 사용하지만 문법적으로 틀리는 경우이다. ‘브로카 실어증’이라고 알려진 이런 유형의 실어증 환자는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또한 조사와 같은 기능적 어휘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간단한 핵심어만 사용하며, 적절한 단어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1861년 폴 브로카에 의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이들 환자의 뇌를 부검한 결과 좌뇌의 앞부분(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밝혀진 바로는 뇌의 어느 한쪽에 손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세포에 의해 어느 정도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신경세포가 손상된 경우에는 회복 가능성이 없어진다. 그리고 명사나 동사, 어휘 형성, 문장 생성 등 언어의 여러 측면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각각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문장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손상된 환자는 문장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또 동사를 담당하는 부분이 손상된 환자는 동사를 ㉡말하지 못하게 된다.


― 장영준, 『언어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