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부전나비 ⓒ www.nabistory.co.kr


사물이 새로 생기거나 사물의 모양이 달라지면 그에 맞추어 낱말이 생기거나 변화하게 된다. 즉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사고의 체계가 정밀해질수록 더 많은 낱말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민족이 지금 풍부한 낱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삶이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말에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어에 중국에서 많은 한자어가 유입되어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으며, 몽골, 만주, 일본 등에서 유입된 말들이 조금씩 섞여 있다. 외부로부터의 문물 도입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입된 다양한 외래어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였다. 그런데 일본어는 우리 민족에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어서 우리말에서 일부 뽑아 버린 일이 있다.


근대화 시기에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우리에게도 국어의 의미가 생기게 되고, 이에 따라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정리하여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말을 이용하여 새로운 낱말을 만드는 시도가 있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자신이 우리말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어 우리말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이것은 우리말 조어 능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유입되는 외래어에 무방비 상태인 상황에서 우리말을 활용하여 새로운 낱말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조어법 논란에 휘말려 폐기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근대 학문을 하는 다른 분야에서는 우리말로 이름을 지어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유독 동식물 이름에서는 멋진 우리말 이름을 지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동식물의 신조어 성공 사례를 보면 우리말 조어력의 한계 만 탓하던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만하다.


우리말은 형태소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낱말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동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이려고 노력한 분은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1908~1950) 선생이다. 일본에서 농업 분야를 연구하면서 나비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귀국하여 우리나라 나비를 채집하기 시작했고, 채집한 나비에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그는 새로운 나비를 발견하고 ‘부전나비’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비의 날개가 부전처럼 보여서 부전나비라고 했다.”


이렇게 말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부전이 뭐지?’ 하며 별로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부전은 원래 어린 여자 아이들이 노리개로 차던 것인데 그 모양이 비슷해서 장구의 줄을 고르도록 끼워놓은 사피(斜皮)를 가리키기도 하고, 사진틀의 서리에 끼우는 세 꼴 거멀장을 가리키기도 한다. 석주명 선생은 나비의 날개 모양에서 부전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 나비를 부전나비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곤충뿐 아니라 여러 동식물 이름을 짓는 데도 이 방법이 원용되어 수많은 우리말 동식물 이름이 만들어졌다.


― 남영신, 「신조어 만들기」


위 글에서 언급한 노리개 '부전'은 아마 이것을 말한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