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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세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언어의 형성은 그 언어 사용자들의 역사, 문화와 함께 진행됐다. 그런데 언어권마다 세상을 분절(分節)하고 표상(表象)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언어의 차이가 세상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낳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여 언어화하는지 살펴보자. 인간의 언어는 물리적인 세상 그 자체를 담고 있지는 않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파악하고 이해한다.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그것을 인지하는 태도는 서로 다르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그림> 루빈의 잔


<그림>에서 검은색을 배경으로 흰색에 초점을 맞추어 그 형상을 생각해 보면 잔으로 보인다. 반대로 흰색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검은색에 초점을 ㉠맞추면 마주보는 두 사람의 얼굴로도 볼 수 있다. 무엇이 먼저 보이느냐에 따라 같은 그림도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인지 과정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추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사람들은 객관적인 논리에 의해서라기보다 주변 상황이나 세상사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사물이나 현상을 주관적으로 수용하여 이해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인간이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모습, 소리, 냄새 등등의 물리적인 실제 그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 이것을 기호화하고 기억하는 우리의 능력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눈은 천만 가지의 색깔을 식별할 수 있는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영어에서는 4천 가지 색 이하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기본 색깔을 11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색깔을 11가지로 ㉡분절한 것이다.


한편, 빨간색이라는 개념은 물리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나겠지만, 빨간색이라는 범주* 속에서 하나의 빨간색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므로, 똑같은 빨간색이 아니더라도 신호등의 빨간색을 보고 운전기사는 차를 세운다. 인간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범주화함으로써 그들의 주위 환경에 대처하는 것은 생존과도 관계가 있다. 인간이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면 이러한 소리의 질을 하나하나 헤아리지 않고 단지 위험의 표시로 범주화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낯선 문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명확하게 구분 짓는 범주에 대하여 그 문화 속의 사람들은 그러한 범주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자신이 쉽게 묘사할 줄 모르는 사물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놀라울 정도로 감지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은 쌀과 관련하여 쌀, 밥, 모, 벼, 뉘, 죽, 누룽지 등의 여러 개의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에스키모인은 ‘눈[雪]’을 200여 개의 다른 용어로 사용한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는 생활환경, 즉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별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별개의 사회에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 언어는 오랜 세월을 거쳐서 축적된 개념 형태의 체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각 언어는 그 자체의 범주와 또 그 범주를 나타내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의 눈으로 보는 주관적인 세상을 제 나름대로 분절하고 추상(抽象)하고 표상(表象)하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 속에 저장된 세상을 이해한다는 뜻이 된다.


*범주 : 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


― '인간과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