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국어는 문법적 기능을 담당하는 요소인 조사가 풍부하게 발달한 언어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사의 기능이나 용법을 규명하는 일은 국어의 문법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가) 영수가 삼국지를 읽었다.

(나) 영수가 삼국지는 읽었다.

(다) 염소와 말이 풀을 먹었다.


(가)의 ‘삼국지’에는 ‘를’이 붙어 있는데, ‘를’은 ‘삼국지’가 이 문장의 목적어임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하지만 (나)의 ‘삼국지’ 뒤에 붙은 ‘는’은 ‘삼국지’가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기능 없이 의미만을 더해 주는 기능을 한다. 즉, (나)는 ‘영수가 삼국지가 아닌 다른 책은 읽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조사는 체언에 붙어 다른 말과의 관계를 표시하거나 어떤 뜻을 더해 주는 기능을 하는데, 전자를 격조사라 하고 후자를 보조사라 한다.


(다)에서 ‘와’는 ‘염소’와 ‘말’을 병렬적으로 이어주는데, 이처럼 ㉠둘 이상의 체언을 이어주는 기능을 하는 조사를 접속조사라 한다. ‘와’와 같은 조사를 격조사가 아닌 접속조사로 따로 나눈 것은 그 기능이 격조사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격조사가 붙은 체언은 문장의 한 성분이 되지만 접속조사가 붙은 체언은 접속조사에 의해 이어진 모든 체언이 한 덩어리로 문장 성분이 된다. 


(다)와 (가)를 비교해 보면, 주어 자리의 조사가 ‘가’에서 ‘이’로, 목적어 자리의 조사가 ‘를’에서 ‘을’로 바뀌었다. 이것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느냐 자음으로 끝나느냐에 따라서 조사의 형태만 바뀐 것이다. 이와 같이 기능은 같으면서도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바뀐 쌍을 이형태 관계에 있다고 한다.


조사는 원칙적으로 자립형식 뒤에 붙는 문법적 요소이다. 자립형식이란 더 이상의 문법적 요소가 붙지 않고도 단독으로 문장 속의 어떤 성분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다. 조사가 붙을 수 있는 말들의 자립성은 어미가 붙는 말들과 견주어 보면 뚜렷해진다. (가)에서 ‘-었-’이 붙은 ‘읽-’이나 ‘-다’가 붙은 ‘읽었-’은 단독으로 문장 속에 나타날 수가 없기 때문에 자립성이 없다. 국어 문법에서 ‘가, 를’ 따위에 대해서는 단어 자격을 주고, ‘-었-, -다’ 따위에 대해서는 단어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은 이들이 붙을 수 있는 말들의 자립성 유무를 고려한 것이다. 


앞에서 조사를 설명할 때 무엇에 붙어 쓰인다는 표현을 썼는데, 조사나 어미처럼 다른 말에 붙어 쓰이는 말들을 접사라 한다. 접사 가운데는 조사나 어미가 아닌 것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에서 ‘-들’이 그것인데 이것을 파생접사라 한다. 흔히 좁은 의미로 접사라고 할 때는 이러한 파생접사만을 가리킨다. 그런데 ‘-들’은 자립형식인 체언에 붙는 것이어서 조사와 혼동하기가 쉽다. 이 ‘-들’을 조사가 아닌 파생접사라고 하는 까닭은, 조사는 그것들이 붙을 수 있는 어휘 범주가 주어지면 그 범주에 속하는 모든 단어들에 다 붙을 수 있지만 ‘-들’은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 남기심⋅고영근, 「표준국어문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