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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편찬된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는 훈민정음 자음의 명칭을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밝히고,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글자의 배열은 첫소리(초성)와 끝소리(종성)에 모두 쓰일 수 있는 여덟 자(ㄱ,ㄴ,ㄷ,ㄹ,ㅁ,ㅂ,ㅅ,ㆁ), 첫소리에만 쓰일 수 있는 여덟 자(ㅋ,ㅌ,ㅍ,ㅈ,ㅊ,ㅿ,ㅇ,ㅎ), 가운뎃소리(중성)에만 쓰일 수 있는 열한 자(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ㆍ)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뒤로 자음과 모음의 운용 원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즉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합해 글자를 만드는 예(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 가('ㅏ'는 'ㆍ')를 보여주고 있고, 첫소리와 가운뎃소리와 끝소리를 합해 글자를 만드는 예(각, 간, 갇, 갈, 감, 갑, 갓, 강('ㅇ'은 'ㆁ')를 보여준다.


『훈몽자회』에서는 자음의 이름을 ‘ㄱ:其役(기역), ㄴ:尼隱(니은), ㄷ:池末(디귿), ㄹ:梨乙(리을)…ㅋ:箕(키)…ㅊ:治(치)…’로 표시하고 있다. 여기서 첫째 글자인 ‘其(기), 尼(니), 池(지→디), 梨(리)’는 첫소리에 사용되는 자음의 용례를 보인 것이고, 둘째 글자인 ‘役(역), 隱(은), 末(귿), 乙(을)’은 끝소리에 사용되는 자음의 용례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자음의 이름은 해당 자음이 첫소리와 끝소리에 모두 쓰이면 두 글자로 하고, 첫소리에만 쓰이면 ‘箕(키), 治(치)’와 같이 한 글자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소리에는 사용되지만 끝소리로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한글 자음의 이름을 ‘기역, 니은, 디귿…’으로 부르는 것은 『훈몽자회』에 나타난 자음의 이름을 한글로 적은 것이다. ㉠ 『훈몽자회』가 현대의 자음 명칭과 다른 것이 있다면 ‘키, 티, 피, 지…’ 등이 ‘키읔, 티읕, 피읖, 지읒…’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러면 자음은 어떤 원칙에 의해 순서가 정해졌을까? 『훈몽자회』에는 특별한 설명이 나타나지 않지만, 이는 훈민정음에서 기본자 ‘ㄱ, ㄴ, ㅁ, ㅅ, ㅇ’에 가획된 것을 해당 기본자 뒤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순서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자의 가획 순서는 훈민정음 해례의 조음 위치에 따른 배열순서와 일치한다. 즉 ‘어금닛소리(ㄱ), 혓소리(ㄴ), 입술소리(ㅁ), 잇소리(ㅅ), 목구멍소리(ㅇ)’의 순서로 배열된다. 이 중 ‘ㅇ’은 첫소리에만 사용되므로 가획자인 ‘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ㄴ→ㄷ→ㄹ(가획과 이체)’, ‘ㅁ→ㅂ(가획)’등과 같은 순서로 배열된다. 첫소리에만 쓰이는 여덟 글자의 순서 역시 같은 원리로 정해졌다. ‘(ㄱ)→ㅋ’, ‘(ㄴ→ㄷ)→ㅌ’, ‘(ㅁ)→ㅍ’, ‘(ㅅ)→ㅈ→ㅊ→ㅿ(가획과 이체)’, ‘(ㅇ)→ㅎ(가획)’ 등의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다.


― 박영준 외, ‘우리말의 수수께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