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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를 자기 중심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심리 구조는 언어 표현에도 반영된다. 예컨대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한 쌍의 단어를 열거할 때 화자에게 더 가까운 것을 먼저 들고 더 먼 것을 나중에 든다. ‘내일오늘’이 아니라 ‘오늘내일’이라 하고 ‘저기여기’가 아니라 ‘여기저기’라 하는 것은 ‘나’에게 가까운 ‘오늘’과 ‘여기’를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가 아니라 ‘엄마 아빠’라고 하는 것도 어린아이가 자기 마음에서 더 가까이 느껴지는 엄마를 먼저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은유(死隱喩)의 대부분이 신체 일부의 이름을 빌려 쓰는 현상도 화자의 심리를 반영하는 언어 표현이다. 바늘에서 실을 꿰는 부분을 '바늘귀'라 하는 것은 신체의 일부인 ‘귀’를 빌려 바늘의 특정 부분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서 나왔다. 영어에도 'eye of a needle'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은, 신체 부분이 화자와 가장 가깝고 친숙한 것이므로 이를 빌려서 사물을 표현하는 현상이 범언어적임을 말해 준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그 언어 표현에는 상응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단순한 개념은 그 표현도 단순하고, 복잡한 개념은 그 표현도 복잡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사람’에 ‘들’을 붙여 복수 개념인 ‘사람들’을 표현하지, 어떤 복수 개념을 나타내는 말에 일정한 형태소를 첨가하여 단수 개념을 표현하지 않는다. 또한, ‘하다’에 ‘안’을 더해 ‘안 하다’라는 표현을 형성하거나 ‘do’에 ‘not’을 더하여 ‘not do’라는 표현을 만들지만, 그 반대의 표현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언어 표현은 인간의 심리 구조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의 심리 작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구성 요소는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그 단위를 분리시키거나 중단시키는 것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통 여러 사 람이 대화를 하는 중에 끼어들고 싶을 때, 사람들은 화자가 말하는 중간에 아무데서나 끼어들지 않고, 적어도 한 문장이 끝났을 때를 기다려 자기 말을 한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에도 문장 중간이 아닌 주어와 술어의 경계에서 휴지(休止)를 갖 고, 단어의 중간이 아닌 단어와 단어의 경계에서 “어-, 어-” 하는 말을 삽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한 단위를 분리 혹은 중단시키지 않으려는 심리 작용이 일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심리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완전히 지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

냐하면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사례도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청색과 녹색을 ‘푸르다’

라는 단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우리가 두 색을 구별하여 인식하지 못한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색채어가 그다지 많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색채어가 풍부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색에 대해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심리 작용이 언어의 구조와 관계없이 어떤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