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들이 최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언어학의 한 분야 중에 인지언어학이 있다. 인지언어학은 “인간 마음의 본질, 더 나아가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언어’, ‘마음과 몸’, ‘문화’의 상관성을 밝히려는 언어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언어의 형식과 의미 사이를 도상성(圖像性), 지표성(指標性), 상징성(象徵性)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도상성은 인지언어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기호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 사실적 유사성이 존재할 때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면, ‘패랭이꽃’은 초립동이들이 쓴 모자 ‘패랭이’를 닮은 꽃이므로 그 명칭과 지시물의 관계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다. 이 외에, 두 개념이 연합되어 합성될 때, 사람의 선험적 경험이 어순에 반영된 경우에도 도상성이 나타난다. 즉, A와 B 두 요소가 합성될 때, 어순이 ‘AB’로 굳어져 합성된다. 이러한 고정된 어순은 언중의 인지적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즉, ‘부모’, ‘남녀’, ‘부부(夫婦)’ 등 성별의 어순에는, 두드러지고 힘이 있는 쪽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쪽보다 앞자리를 차지하여 고정된 어순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도 도상성의 일종이다. 또한, 쉽고 단순하고 긍정적인 요소가 어렵고 복잡하고 부정적인 요소보다 선행하여 어순을 이루게 되거나, ㉠‘나’에게 가깝거나 혹은 ‘자아’ 중심의 개념어가 선행하여 어순을 이루게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나에게 가까운 요소를 중심으로 지각하고 파악하려는 인지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언어는 지표성을 지닌다. ‘지표’는 대상 그 자체를 모방하지는 않지만 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상을 연상시키는 기호를 의미한다. 굴뚝의 연기는 누군가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고, 풍향계는 바람의 방향, 수은주의 높이는 기온의 높낮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방문객이 왔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한 언어에도 지표성이 드러나는데, 우리 주위의 범위 안에 있는 사물을 가리킬 경우에 해당된다. 이를테면 말을 할 때의 공간과 시간적 위치는 다른 개체의 공간과 시간의 위치를 나타내는 기준점이 된다. 따라서 ‘여기 있을게.’, ‘지금 만나자.’라는 문장은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에 의존한다. 이른바 ‘여기, 저기, 거기, 앞, 뒤, 오른쪽, 왼쪽’과 같은 지시 표현은 상황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표의 일반적 성격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상징성이란 기호의 형태와 의미가 문화적 관습이나 규약, 규칙에 의해 자의적 관습적으로 결합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은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을 ‘나무’라 한다. 즉 나무는 식물의 일종인 것이다. 이 나무를 [namu]라고 발음하고, 영어권 언중은 [tri:]라 하고, 중국 사람들은 ‘木’이라 쓰고 [mu]라 발음한다. 이는 언어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가 없고, 단지 상징성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어떤 사물에 대한 구체적 말소리는 실제 나무 와 어떠한 유사성도 없지만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언중은 그 소리를 듣고 나무를 연상한다. 그런데 ‘나무’라는 언어 기호는 특정한 개별적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 전체가 지니는 공통적 특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를 언어의 상징성이라 한다.


요컨대, 언어란 기호의 형태와 의미 사이에 도상성, 지표성,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요소가 뒤섞여 기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상은 지표적인 측면을 함께 가질 수도 있고, 동시에 지표도 도상적 성격과 상징적 성격을 함께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