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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소리나 형태는 그 수가 무한정일 수는 없다. 그 수가 무한정이어서는 사람들이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말의 형태나 의미가 서로 같고 다른 것을 구분하여, 비슷한 것들이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단어나 문법을 모형으로 하여 단어를 만들거나 변화시킨다. 이러한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유추(類推)’라고 하는데, 이를 논리학에서는 어떤 특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특수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모형은, 절대적인 원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추는 그 과정이 다양한 언어 창조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추는 언어 변화의 중요한 원리가 된다. 음운 변화가 일정한 형태 안에서 음절 구조의 변동에 한정된다면, 유추는 음절 구조의 제약과는 관계없이 새로이 고쳐진 형태로 닮아가는 경향을 띤다. 형태의 변화 측면에서 보면 음운 변화는 자음과 모음, 모음과 모음, 모음과 자음, 자음과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절 구조 내의 변동이지만, 유추는 아예 음절을 달리하여 음운을 덧붙이거나 완전히 이동시켜 버리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운의 변화는 미시적(微視的)인 언어 변화를, 유추는 보다 거시적(巨視的)인 언어 변화를 이끄는 주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유추의 본질은 변화를 통한 일종의 언어 창조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처엄>처음, 일홈>이름, 소곰>소금’과 같이 ‘-음’꼴로 만들어 가거나, ‘호랑>호랑이, 배암>배암이, 납>나비’와 같이 동물의 이름을 ‘-이’꼴로 만들어 가는 예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처음’, ‘이름’, ‘소금’은 ‘처엄’, ‘일홈’, ‘소곰’에서 각각 끝음절이 ‘-음’으로 바뀌는 작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름씨(명사)’라는 공통 요소를 바탕으로 기억하기 편하게 ‘-음’으로 통일하려는 유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위에 든 동물 이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


이를 유추 모형의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 모형에는 크게 통합 관계에 따른 모형과 계열 관계에 따른 모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암+-이>배암이’와 같은 형태는 통합 관계에 따른 모형이라고 할 수 있고, ‘배암’ 자리에 ‘호랑’, ‘납’과 같은 다른 단어가 올 때 이들 단어 사이에는 계열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장 단위로 보면, 기본 문형은 일종의 글의 모형으로 여기에 알맞은 어휘만 넣으면 얼마든지 다른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계열 관계는 통합 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특히, 한국어, 독일어, 영어 등과 같이 단일어가 모여 합성어를 이루려는 경향이 짙은 언어나, 음소 문자를 쓰는 언어의 유형은 이러한 유추에 따른 언어  창조가 가장 알맞다.


아무리 일상적인 형태에서 유추된 모형을 따르는 어휘나 문법형태소일지라도 말을 직접 사용하는 언중(言衆)이 쓰지 않으면 사어(死語)가 되고 만다. 반대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작가의 말은 다소 생소하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사어가 되어 버렸던 ㉠‘아스라이’가 어느 서정 시인의 시에서 쓰인 뒤로 보편적인 말이 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 정호완, <우리말의 상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