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2011 (42)

독서/예술

영화적 관습과, 관습 비틀기(2011, 9월모평)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이 차에 탄 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목적지에 내리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가 복잡한 도심에서 주차할 곳을 우연히, 그리고 매우 쉽게 찾는 장면에 대해서도 ⓐ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실상 어느 관객도 그와 함께 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야기의 비본질적인 부분을 ⓑ배제하는 영화상의 생략을 기꺼이 수용한다. 극적인 전개를 위해 극단적인 사건을 설정하거나 연인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작중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애절한 음악을 삽입하는 것, 카메라의 움직임이 유발하는 현장감과 정서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흔히 영화를 사실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영화의 재현 방식에 반응해서 영화 속 내용을 현실처럼 보는 데에 동의함을..

독서/과학

해석 기하학의 탄생(2011, 9월모평)*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 데카르트는 수학 분야에서도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방법서설』의 부록인 ‘기하학’에서 데카르트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좌표’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 개념으로 그는 해석(解析) 기하학의 토대를 놓았고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수학자 라그랑주는 이에 대해 “기하학과 대수학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는 동안에는 두 학문의 발전이 느렸고, 적용 범위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학문이 길동무가 되어 함께 가면서 서로 신선한 활력을 주고받으며 완벽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라고 묘사했다. 데카르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직교하는 직선들이 만드는 좌표계를 데카르트 좌표계라고 부른다. 통상적으로 이 좌표 계의 가로축은 ‘x축’, 세로축은 ‘y축’이라고 하며 두 축이 ..

독서/인문

진리 판단 이론 - 대응설, 정합설, 실용설(2011, 9월모평)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학문 활동에서 ‘진리’ 또는 ‘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 이론은 진리이다’라고 말하거나 ‘그 주장은 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진리’라고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에는 대응설, 정합설, 실용설이 있다. 대응설은 어떤 판단이 사실과 일치할 때 그 판단을 진리라고 본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가서 보라’라는 말에는 이러한 대응설의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감각을 사용하여 확인했을 때 그 말이 사실과 일치하면 참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것이다. 대응설은 일상생활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때 흔히 취하고 있는 관점으로 우리가 판단과 사실의 일치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

독서/독서이론・언어

국어의 부정 표현(2011, 고3, 7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을 부정문이라고 한다. 국어의 부정 표현은 부정 부사 ‘안’, ‘못’과 부정 용언 ‘아니하다’, ‘못하다’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부정 부사를 통한 부정문을 짧은 부정문, 부정 용언을 통한 부정문을 긴 부정문이라고 한다. ‘안, 아니하다’의 부정은 어떠한 상태를 단순하게 부정하는 상태 부정을 나타내거나, 어떤 동작이 주어의 의지에 의해 일어나지 않은 의지 부정을 나타낸다. ‘못, 못하다’의 부정은 일반적으로 주어의 능력이나 다른 원인 때문에 그 행위가 일어나지 못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국어의 부정 표현에는 몇 가지 예외적인 현상이 보인다. 우선 형용사가 서술어로 쓰인 문장에서는 의지 부정 표현, 능력 부정 표현이 사용되지 않음을 (1)을 통해 알 수 있다. (1)의 ㄴ,ㄷ에서 ‘안..

독서/기술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2011, 고3, 7월)

여름철에는 열대야가 길어지고, 겨울철에는 한파가 이어지거나 폭설 등의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서 지구 환경 생태계에 변화를 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 위협을 ㉠주는 이러한 이상 기온 현상의 주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에너지 남용으로 인한 과도한 온실가스의 배출을 지적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이다. 블루 이코노미란 단순히 친환경적인 소재나 기술의 개발이 아닌 보다 능동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순환 시스템을 모방한 방식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거두는 시스템들이 개발되고 있다.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블루 이코노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사실 이러한 시스템은..

독서/인문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우애'(2011, 고3, 7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애(philia)’란 선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라고 했다. 우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무생물이어서는 안 되고, 또한 상대가 자신의 선의에 응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무생물은 생명이 없기에 선의 또한 있을 수 없으며, 주기만 하는 사랑은 주는 사람의 일방적 선의로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애의 형태로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득을 위한 우애, 둘째는 쾌락을 위한 우애, 셋째는 선의에 의한 즉,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바탕을 둔 우애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득이나 쾌락을 위한 우애는 완전한 우애가 될 수 없다. 이득을 위해서 친구를 사귀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

독서/사회

주식거래표와 주식 차트(2011, 고3, 7월)

기업이 자본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이 주식이다. 기업은 주식의 발행을 통해 기업 운영의 자본금을 마련하고, 이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 즉 주주들은 기업 운영을 통해 거둔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돌려받게 된다. 그리고 이 주식은 금융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해당 기업의 과거 실적에 근거하여 그 기업의 주식을 선택하거나, 기업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의 견해에 따라 그 기업의 주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주식거래를 할 때 살펴보는 기본적인 자료에는 주식거래표와 주식 차트가 있다. 주식거래표에는 현재가, 시가, 종가, 고가, 저가, 전일비, 액면가 등이 표시되어 있어 해당 기업의 주식거래 현황 및 가치와 정보 등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현재가’는 지금 시장에서 거..

독서/과학

식물의 생존 방식, 알레로파시(allelopathy)(2011, 고3, 7월)

동물들은 번식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풀이나 나무라고 해서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식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뿌리나 잎, 줄기 등에서 특정한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이웃하는 다른 식물의 발생이나 성장․번식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를 알레로파시(allelopathy), 또는 타감 작용(他感作用)이라 한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는 화학 물질을 타감 물질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알려진 몇 가지 알레로파시를 보자. 소나무 뿌리는 갈로탄닌이라는 타감 물질을 분비한다. 그리하여 그 거목 아래에는 다른 식물은 물론이고 제 새끼인 애솔도 거의 살지 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서식하는 관목의 일종인 살비아는 휘발성 터펜스를, 유칼립투스는 유카립톨을 줄기나 낙엽, 뿌리에서 뿜어내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

독서/예술

예술 작품의 층이론(層理論)(2011, 고3, 7월)

비판적 존재론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은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을 층이론(層理論)으로 설명하였다. 하르트만은 그의 저작 『미학』에서 예술 작품은 지각되는 실재적 재료인 ‘전경(前景)’과 비실재적이며 정신적 내포(內包)라고 할 수 있는 ‘후경(後景)’의 두 가지 구성 요소로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술 작품의 전경은 감각적이며 실재적인 ‘형상’의 층이지만, 후경은 비실재적 ‘이념’의 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은 전경과 후경의 이층적(二層的)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전경과는 달리 후경은 내용면에서 1층에서 4층으로 세분화되는 다층적 구조로 되어 있다. 후경의 여러 층은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층 서열에 따..

독서/과학

지근섬유와 속근섬유(2011, 6월모평)

어떤 학생이 가볍게 걷다가 빠르게 뛴다고 하자. 여기에는 어떤 운동생리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운동을 수행할 때 근육에서 발현되는 힘, 즉 근수축력은 운동 강도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따라서 운동을 하는 학생이 뛰는 속도를 높이게 되면, 다리 근육의 근수축력은 그에 따라 증가한다. 다리 근육을 포함한 골격근*은 수많은 근섬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근섬유들은 운동 신경의 자극에 의해 수축되는데, 이때 하나의 운동 신경과 이에 의해 지배되는 근섬유들을 ‘운동 단위’라고 부른다. 운동 신경의 지배를 받는 근섬유는 크게 지근섬유와 속근섬유로 구분된다. 지근섬유는 근육 내 산소 저장과 운반에 관여하는 미오글로빈의 함량이 높아 붉은색을 띠고 있어 적근섬유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미오글로빈의 함량이 적어 ..

독서/독서이론・언어

한국어 높임 표현의 선택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2011, 6월모평)

한국어에서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높임법 차원에서 서로 구별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나이’와 ‘연세(年歲)’, ‘생일(生日)’과 ‘생신(生辰)’, ‘밥’과 ‘진지’ 등의 명사 어휘를 비롯하여 ‘주다’와 ‘드리다’, ‘고맙다’와 ‘감사하다’, ‘미안하다’와 ‘죄송하다’ 같은 동사나 형용사들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보이는 높임의 차이는 단어의 종류와 관련이 있어, ‘나이’와 ‘연세’처럼 고유어와 한자어의 의미가 비슷할 경우, 일반적으로 고유어보다는 한자어가 더 높은 말로 쓰인다. 물론 ‘생일’과 ‘생신’의 예처럼 같은 한자어끼리도 높임의 정도에 차이를 보이거나 ‘밥’과 ‘진지’처럼 고유어 가운데서도 높임의 정도가 다른 예들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 대화에서 한국어 높임 표현의 선택을 결..

독서/예술

연주 개념의 변천(2011, 6월모평)

음악에서 연주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부터이다. 당시 유행하였던 영향미학에 따라 음악은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여기서 내용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감정을 의미했는데, 이 시기의 연주는 그 감정을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작곡자들은 악곡 속에 그 감정들을 담아내었고, 연주자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이 갖고 있는 감정을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즉 연주란 연주자가 소리를 통해 악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의미했으며, 당시에 청중들은 연주를 통하여 작곡자가 제시한 감정을 감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의 개념은 19세기에 들어 영향미학이 작품미학으로 전환되면서 바뀌게 된다. ..

독서/기술

반도체 소자 : p형과 n형(2011, 6월모평)

1883년 백열전구를 개발하고 있던 에디슨은 우연히 진공에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것은 플레밍이 2극 진공관을 발명하는 토대가 되었다. 2극 진공관은 진공 상태의 유리관과 그 속에 들어 있는 필라멘트와 금속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공관 내부의 필라멘트는 고온으로 가열되면 표면에서 전자(-)가 방출된다. 이때 금속판에 (+)전압을 걸어 주면 전류가 흐르고, 반대로 금속판에 (-)전압을 걸어 주면 전류가 흐르지 않게 된다. 이렇게 전류를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작용을 정류라 한다. 이후 개발된 3극 진공관은 2극 진공관의 필라멘트와 금속판 사이에 ‘그리드’라는 전극을 추가한 것으로, 그리드의 전압을 약간만 변화시켜도 필라멘트와 금속판 사이의 전류를 큰 폭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3극..

독서/사회

혁신의 확산(2011, 6월모평)

혁신의 확산이란 특정 지역이나 사회 집단의 문화나 기술, 아이디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른 지역 또는 사회 집단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말한다. 지리학에서는 혁신의 확산이 시공간적인 요인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고 시간에 따른 공간 확산 과정을 발생기, 확산기, 심화․포화기의 3단계로 설명한다. 혁신의 발생기에는 혁신 발생원과 가까운 지역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반면, 먼 지역에서는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혁신 수용률에서 지역 간의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확산기에는 초기의 혁신 수용 지역에서 먼 지역까지 혁신의 확산이 일어난다. 심화․포화기에는 최초 발생원과의 거리에 관계없이 전지역에서 혁신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수용률에서 지역 간의 격차가 점차 사라진다. 혁신의 공간적 확산은 전염 확산과 계층 확산으로..

독서/인문

존 스튜어트 밀 : 일치법과 차이법(2011, 6월모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에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과적 사고는 이와 같이 어떤 일이 발생하면 거기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인을 찾아내는 방법을 밝혀내고자 한 사람으로 19세기 중엽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있다. 그는 원인을 찾아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일치법과 차이법이다. 일치법은 어떤 결과가 발생한 여러 경우들에 공통적으로 선행하는 요소를 찾아 그것을 원인으로 간주하는 방법이다. 가령 수학여행을 갔던 ○○ 고등학교의 학생 다섯 명이 장염을 호소하였다고 하자. 보건 선생님이 이 학생들을 불러서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조사해 보았다. 다섯 명의 학생들이 제출한 자료를 본 선생님은 이 학생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