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존재론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은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을 층이론(層理論)으로 설명하였다. 하르트만은 그의 저작 『미학』에서 예술 작품은 지각되는 실재적 재료인 ‘전경(前景)’과 비실재적이며 정신적 내포(內包)라고 할 수 있는 ‘후경(後景)’의 두 가지 구성 요소로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술 작품의 전경은 감각적이며 실재적인 ‘형상’의 층이지만, 후경은 비실재적 ‘이념’의 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은 전경과 후경의 이층적(二層的)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전경과는 달리 후경은 내용면에서 1층에서 4층으로 세분화되는 다층적 구조로 되어 있다. 후경의 여러 층은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층 서열에 따라 앞 층에 의하여 다음 층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감각적인 전경을 통해 이념적이고 정신적인 후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초상화를 구체적인 예로 든다면, 전경은 화면이라는 2차원 공간에 칠해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선과 색의 배치이다. 후경의 제1층은 묘사된 인물의 ‘외면적ㆍ물적’ 계층이고, 제2층은 앞의 물적 계층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인물의 동작, 표정 등을 보여주는 ‘생명’ 계층이다. 제3층은 앞의 생명 계층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인물의 성격, 내적 운명 등을 보여주는 ‘심적’ 계층이고, 마지막 제4층은 심적 계층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인물의 본질, 이념, 작품의 의의 등을 보여주는 ‘정신적’ 계층이다.

 

하르트만은 예술 작품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감상자의 관계를 정립한다. 즉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정신 세계인 후경은 전경으로 형상화되고, 감상자는 전경을 통하여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한 후경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의 감각적, 현상적 층인 전경을 통하여 정신적 층인 후경에 깊숙하게 들어가 예술가와 만나고 그와 정신적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예술 작품의 감상은 감상자가 주체적으로 예술가의 정신적 세계와 만나서 대화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추체험*을 넘어서 ⓐ새로운 제2의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감상이 단지 감각적인 쾌감만을 맛보고, 예술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논하는 데만 주안점을 둔다면 무슨 의의를 찾을 수 있겠는가. 감상은 감상자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정신을 살찌우는 것이어야 한다.

 

* 추체험(追體驗) :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 또는 이전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낌.

 

― 박휘락, <미술감상과 미술비평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