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쇠라는 1884년에 열린 독립전에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전시했다. 이 전시회에서 자연주의 작가와 무정부주의적인 비평가와 예술가들은 쇠라에게 찬사를 보냈다. 작가 겸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쇠라의 작품을 위해 ‘신인상주의’라고 칭했다. 과연 쇠라는 어떤 그림을 그렸기에 찬사와 함께 ‘신인상주의’라는 말을 들었을까?


쇠라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상주의를 알아야 한다. 인상주의 이전까지의 화가들은 사물에는 고유한 색이 있기 때문에 이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은 태양 광선에 따라 사물의 색채가 수시로 변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물감을 혼합하는 방법은 색채를 탁하게 하기 때문에 태양 광선으로 빛나는 자연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상주의자들은 팔레트에 색을 섞지 않고 원색의 물감을 화면에 직접 덧칠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색이 혼합되는 효과를 노렸다. 특히 모네는 이런 인상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냈다.


(좌) 모네, 「파라솔을 든 여인」 / (우)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은 사물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덧칠하듯이 그렸기 때문에 붓질이 거칠고 덜 그린 듯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색채 사용에 일관성이 없었으며 화폭에서 물감이 섞이기 때문에 색채가 여전히 탁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쇠라는 이를 해결하고자 과학자에 의해 탐구된 색채 이론을 연구한 뒤, 색채에 대한 일관된 법칙에 따라 세심하게 원색의 물감을 화폭에 점으로 찍었다. 이는 태양 광선을 원색으로 분할한 뒤 그 원색을 화폭에 작은 점으로 찍음으로써 사람의 망막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기법은 색채를 섞지 않고 점을 찍는다는 의미로 ‘점묘법’이라고 불린다.


인상주의자들은 색채에 지나치게 집착해 순간적인 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르네상스 이래 고전적인 전통이 된 구성이라든지 형태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쇠라는 이를 해결하고자 고전적 전통인 구도, 비례, 원근법 등을 연구하였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데생을 수십 번씩 하면서 사물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배치하여 이상적인 구성과 형태를 만들려고 했다. 즉 개별적 사물의 특징보다는 보편적인 특징을 추출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쇠라 그림의 화폭 속 인물들은 표정이 없으며 개성적인 신체 특징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쇠라는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반 고흐, 고갱 등이 모두 그의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마티스, 드랭 등의 야수파 화가들은 신인상주의적 색채 이론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했다. 또한 들로네, 메챙제, 세베리니 등도 운동감과 활력을 표현하기 위해 점묘법을 실험했다. 그리하여 쇠라는 20세기 초 입체주의를 비롯한 기하학적 추상 미술의 바탕이 되면서 20세기 미술을 연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박갑영, ‘서양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