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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연주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부터이다. 당시 유행하였던 영향미학에 따라 음악은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여기서 내용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감정을 의미했는데, 이 시기의 연주는 그 감정을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작곡자들은 악곡 속에 그 감정들을 담아내었고, 연주자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을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이 갖고 있는 감정을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즉 연주란 연주자가 소리를 통해 악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의미했으며, 당시에 청중들은 연주를 통하여 작곡자가 제시한 감정을 감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의 개념은 19세기에 들어 영향미학이 작품미학으로 전환되면서 바뀌게 된다. 작품 그 자체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관심을 갖는 작품미학의 영향에 따라 작곡자들은 음악이 내용을 지시하거나 표상하도록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갖는 절대음악을 탄생시켰다. 작곡자들은 어떤 내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동기, 악구, 악절, 주제의 발전과 반복 등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작곡함으로써 형식에 의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서 지시하는 내용이나 감정이 없어지자 연주자는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에 의한 아름다움의 의미들을 재구성하여 표현하려 했고, 이에 따라 연주는 해석으로 이해되었다. 실례로, 당시 베토벤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변형시켜 연주했던 바그너나 말러 등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연주자가 해석한 작품을 감상하게 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에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구체화된다.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음악의 전문화 현상이 나타났다. 작곡자와 연주자가 뚜렷하게 분리되었고, 연주자 가운데에서도 장르나 시대 또는 작곡자에 따른 전문 영역이 세밀하게 구분되었다. 한 작품에 대해서도 수십 개의 음반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다른 연주자와 구별되는 독자성을 강조해야 했다. 이에 따라 연주자는 작품을 보다 더 다양하면서도 주관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이제 연주에서는 작품 자체의 충실한 해석에 의해 음악적 의미를 재구성했던 19세기와는 달리, 연주자의 주관적 감정에 의한 해석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이 연주될 때, 작곡자의 작품은 연주자에 의해 재창조되며, 이때 청중에게 감상은 이중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