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왼쪽에서 첫 번째)와 성모 마리아(왼쪽에서 두 번째)가 참석한 어느 혼인잔치 장면을 묘사한 러시아 성화의 일부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흔히 가까운 쪽의 대상은 크게, 멀리 있는 대상은 작게 표현하곤 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된 일점원근법에 기초한 것이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3차원적 대상을 2차원적 평면에 정확하게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을 하나로 고정시킨 후, 보이는 장면을 평면에 그려 냈다. 


그런데 ⓑ러시아의 성화(聖畵) 화가들은 세속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 이야기나 성스러운 신의 세계를 그렸는데, 이 그림들은 일점원근법과는 다른 표현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러시아 성화에서는 인물과 사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중요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성스러운 존재를 형상화할 때는 사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드러낸다.


또한 그들은 초월적 존재인 신이 세상의 곳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선을 표현하다 보니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은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일점원근법에서와는 달리 하나의 그림 속에 여러 개의 시점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성화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탁자나 의자 등은 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원형의 탁자를 성화에 그린다고 가정하자.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밑에서 올려다보지 않는 한, 원형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타원에 가깝게 보인다. 그 타원을 반으로 자르면 윗부분은 그림 1-a, 아랫부분은 그림 2-a와 같은 모양이 된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곳곳에 존재하므로, 앞에서 본 모양뿐만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에서 본 모습도 표현해야 한다. 이것들을 모두 합쳐 평면에 나타내려다 ㉠보니, 그 윗부분은 그림 1-b와 같이 더욱 구부러지게 된다. 같은 원리에 따라 타원의 아랫부분도 안쪽으로 굽히면, 윗부분과는 반대로 그림 2-b와 같이 편평하게 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하나의 반원이 만들어지는데, 러시아 성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원형의 탁자는 사실 원형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 우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표현은 왜곡으로 생각되겠지만, ⓒ당시의 감상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림에 표현된 인물과 사물의 형상이 본래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세상의 곳곳을 향하는 초월자의 시선이 자신에게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화의 감상을 통해 성스러운 신의 세계를 체험했던 것이다. 


20세기 초에 러시아 성화를 처음 접한 ⓓ서구의 미술사학자들은, 러시아 성화가 원근법이 없는 원시적인 표현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성화 화가들은 오히려 확고한 표현 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신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 고유의 표현 방식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 진중권, ‘러시아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