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역사 (29)

독서/인문

선비와 선비 정신(2010, 고3, 7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정립한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선비는 사회의 지도 계층으로서 그 지위가 확립되었다. ‘선비’라는 말은 ‘사대부(士大夫)’의 신분에 속하면 아무에게나 붙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물에게 존경의 뜻을 실어서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선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는 벼슬길에 나가든 산림에 은거하든 상관없이 항상 자신을 선비로서 다듬어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선비는 조정에서 임금의 정치를 보좌할 때 선비다운 기개를 발휘하여, 권세와 지위를 이용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태도에 맞서, 그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야 한다. 혹 벼슬하려는 뜻을 버리고 산림(山林) 속에 은거하여 ‘처사(處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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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총 도입과 그것이 가져온 변화(2009, 6월모평)

조선 전기 조선군의 전술에서는 기병을 동원한 활쏘기와 돌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병의 다양한 화약 병기 및 활의 사격 지원을 중시했다. 이는 여진족이나 왜구와의 전투에 효과적이었는데, 상대가 아직 화약 병기를 갖추지 못한 데다 전투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적 우위는 일본군의 조총 공격에 의해 상쇄되었다. 16세기 중반 일본에 도입된 조총은 다루는 데 특별한 무예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분이 낮은 계층인 조총 무장 보병이 주요한 전투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의 절강병법은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로,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주력이 천민을 포함한 일반 농민층이었는데, 개인의 기량은 떨어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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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신화가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과정과 메커니즘(2008, 9월모평)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신비화되고 통속화되는가, 영웅에 대한 기억이 시대에 따라 어떤 변천을 겪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더 사실에 가까운 영웅’의 모습에 다가서려는 이들에게 필수적이다. 영웅을 둘러싼 신화가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과정과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특히 국민 정체성 형성에 그들이 간여한 바를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영웅을 만들고 그들의 초상을 새롭게 덧칠해 온 각 시대의 서로 다른 욕망을 읽어 내어 그 시대로부터 객관적인 거리를 획득한다. 무릇 영웅이란 죽고 나서 한층 더 길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며, 그런 사후 인생이 펼쳐지는 무대는 바로 후대인들의 변화무쌍한 기억이다. 잔 다르크는 계몽주의 시대에는 ‘신비와 경건을 가장한 바보 처녀’로 치부되었지만,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집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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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당대 사관의 역사 기록을 열람하면 안 되는 이유(2007, 수능)

예전에 당(唐) 태종이 방현령에게 이르기를 “선대(先代)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을 임금에게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방현령이 대답하기를 “사관은 거짓으로 칭찬하지 않으며 나쁜 점을 숨기지 않으니, 임금이 이를 보면 반드시 노하게 될 것이므로 감히 임금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나 태종은 방현령에게 명하여 순서대로 편찬하여 올리게 했습니다. 방현령은 선대의 실록을 편찬하여 올렸지만, 말에 은근히 숨긴 것이 많았습니다. 어질고 슬기로웠던 태종으로서는 마땅히 바른대로 쓰여 있더라도 싫어할 점이 없었을 것인데, 방현령 같은 일세의 현명한 재상도 오히려 사실을 숨기고 피하여 감히 바른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혹시 태종에게 ㉠미치지도 못하는 후세의 군주가 자기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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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보통 사람들에 주목한 '신문화사'(2007, 고3, 10월)

역사학은 변화한다. 근대 이래로 역사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학파에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가 있다. 이 둘은 역사에 대한 상이한 관점과 서술 방식을 채택하였지만 역사 서술에서 ‘구조’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후 사회ㆍ문화ㆍ학문의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기준이나 구조를 해체하려는 탈중심의 경향이 확산되면서 역사학에도 변화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나 아날학파의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틀에서는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평범한 인물들이 오히려 구조 속에 매몰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학으로 근래에 등장한 것이 ‘신문화사’이다. 신문화사는 구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주목하였고, 사회적 현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사람들이 그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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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2007, 고3, 4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물음에 아주 쉽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 사회의 지난날에 일어난 사실들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그 사실들에 관해 적어 놓은 기록들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흔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날 인간 사회에서 일어난 사실이 모두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쉬운 예를 들면, 김 총각과 박 처녀가 결혼한 사실은 역사가 될 수 없고, 한글 창제의 사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사실 등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소한 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은 역사가 될 수 없고, 거대한 사실, 한 번만 일어나는 사실만이 역사가 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고려 시대의 경우를 보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인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인간 세계의 부조리를 경고하는 것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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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하여(2007, 고3, 3월)

역사는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사실이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역사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특정하게 선택된 사실들의 의미를 인과적으로 연결한 논리적 구성물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역사로 기록되는 이유는 이 사실이 조선의 개국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창건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이나 사물이 발견되고, 이를 통해 조선 개국의 과정이 다른 방향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될 수 있다면 위화도 회군의 역사적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역사 서술의 과정에서 자료가 새롭게 선택될 수 있고, 역사적 의미 또한 바뀔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선택은 언제나 역사가에 의해 결정되며, 해석은 필연적으로 의미 해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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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의병의 봉기 원인(2006, 9월모평)

한국사 연구에서 임진왜란만큼 성과가 축적되어 있는 연구 주제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다. 즉, 온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만 제시되면서, 그 이면의 다양한 실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의병의 봉기 원인은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종래에는 의병이 봉기한 이유를 주로 유교 이념에서 비롯된 ‘임금에 대한 충성’의 측면에서 해석해 왔다. ⓐ실제로 의병들을 모으기 위해 의병장이 띄운 격문(檄文)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해석이 일면 타당하다. 의병장은 거의가 전직 관료나 유생 등 유교 이념을 깊이 체득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킨 동기를 설명하는 데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일반 백성들이 의병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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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2005, 9월모평)

조선 왕조는 유교 정치를 표방하여 오래도록 문(文)을 숭상하였다. 규장각은 이러한 전통 아래 정조(正祖) 때 왕실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정책 연구의 기능까지 발휘한 특별 기구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하던 해(1776년)에 창설되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발족이 아니라, 정조가 동궁(東宮) 시절에 경희궁에 살면서 설치.운영해 온 기구를 발전시킨 것이었다. 정조는 즉위한 다음날 창덕궁 후원의 연지(蓮池) 북쪽 언덕에 이층 건물을 새로 짓도록 하고 이름을 주합루(宙合樓)라 하였다. 이 건물 1층의 이름을 처음에는 어제존각(御製尊閣)이라 하였다가 얼마 후 규장각(奎章閣)으로 개칭하여 자신의 왕위(王威), 즉 국왕으로서의 위엄에 관련되는 자료들을 보관하기 로 하였다. ‘규장’이란 본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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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기인식적 존재가 된 이유(2005, 고3, 4월)

인간은 자기 의식을 지닌 존재이다. 자기 의식은 본질적으로 기억에 의존한다. 인간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억을 의식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목적을 갖고 산다는 것은 적어도 미래에 어떤 일을 성취할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명확한 시간적 구분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기억과 목적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르도뉴의 라스코 동굴을 비롯한 구석기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인간은 이미 2만 년 전, 혹은 그 이전부터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하여 목적 의식을 갖고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동굴에다 그림을 그린 것은 일종의 마법적 목적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원시인들은 동굴의 벽이나 천장에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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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2004, 고3, 10월)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사고 방식으로 본다면, 신화는 인류가 지난날 한때 만들어낸 허구적 창안물에 불과하다. 더구나 자연물에 인격성, 나아가 신성을 부여하는 신화적인 발상은 현대인의 사고 방식에서는 미신으로 ⓐ치부(置簿)된다. 하지만 신화는 현대 사회의 탈마법화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화적인 세계를 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화에 어떤 힘이 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신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나와 인류, 나아가 우주에 대한 근원적인 진실을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한 신화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화는 삶의 무수한 다양성을 보여주며 역사와 신성의 밀접한 관계를 알게 해준다. 신화 속의 신들은 인간 세계에서 원초적 의미를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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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사관 형성(2004, 고3, 4월)

역사가는 믿을 만한 지도를 손에 들고 과거라는 큰 도시를 찾아드는 여행가와 같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지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사실 속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려 낼 수 있게 하는 문제 의식이다. 또한 그것은 어느 시대를 역사적 전후 관계에 따라서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관점이다. 역사가의 사명은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과 관점을 확실하게 세워서 사회와 인간 생활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있다. 결국 역사가의 문제 의식은 궁극적으로 역사가의 사관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역사가의 사관(史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역사가의 사관 형성은 무엇보다도 정직한 마음을 가지는 데서 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솔직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이 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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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변천과 의의(2002, 수능)

지도는 지표(地表) 공간에 관한 인간의 의사 소통 수단으로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활용되어 왔다. 아마도 먼 옛날에는 흙이나 모래 또는 돌 위에 간단하게 공간 정보를 나타내어 이용하였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약 3천 년 전의 선사인(先史人)이 남긴 암각화에 공간 정보가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고구려 벽화에서는 요동성시(遼東城市) 그림이 발견되었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군사용 혹은 행정용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다양한 문헌 자료에 의하여 밝혀졌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제작 기술이 발달하고 그 쓰임이 다양해짐에 따라, 지도는 많은 변천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지도는 조선 시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조선 건국의 에너지가 각종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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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박제가)(2002, 수능)

하사(下士)*는 오곡을 보면 중국에도 있는지를 묻고, 중사(中士)*는 중국 문장이 우리 나라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상사(上士)*는 중국에는 이학(理學)이 없다 한다. 과연 그러하다면 중국에는 배울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큰 천하에 무엇인들 없겠는가? 내가 지나가 본 곳은 중국의 한 모퉁이인 유주(幽州), 연주(燕州)이고, 만난 사람도 문인 몇 사람일 뿐이니 도(道)를 물려받은 큰 선비는 실상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사람이 없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천하의 서적을 다 읽지 못했고 천하의 지역을 두루 돌아보지 못한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는 뛰어난 학자들과 걸출한 문인들이 있는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볼 것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얼 믿고 그러는지 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