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은 변화한다. 근대 이래로 역사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학파에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가 있다. 이 둘은 역사에 대한 상이한 관점과 서술 방식을 채택하였지만 역사 서술에서 ‘구조’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후 사회ㆍ문화ㆍ학문의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기준이나 구조를 해체하려는 탈중심의 경향이 확산되면서 역사학에도 변화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나 아날학파의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틀에서는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평범한 인물들이 오히려 구조 속에 매몰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학으로 근래에 등장한 것이 ‘신문화사’이다.


신문화사는 구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주목하였고, 사회적 현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사람들이 그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했으며,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즉 신문화사는 ㉠민중들의 시시콜콜한 문화도 역사를 이끌어온 힘이었다고 보고, 그것들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 인정하면서 혁명이나 전쟁, 군주나 영웅 중심이 아니라 사소한 문화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것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볼 때 검시보고서, 임상진료카드, 낙서 등 사람들이 의미를 새겨 넣었던 것은 무엇이든 역사의 사료로 쓸 수 있게 된다. 이는 기존 역사 연구 방법론을 해체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신문화사의 역사 인식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예를 통해서 알아 보자. 이탈리아의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저서『치즈와 구더기』는 16세기의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방앗간 주인이었던 메노키오란 인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16세기의 교회 문서에 기록된 메노키오의 일상과 이단 심문에서 했던 발언들, 그가 즐겨 읽었던 책들의 목록과 그 내용을 분석한다. 메노키오는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치즈에 구더기가 스미는 것처럼 우주는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이단적 주장을 교회 심판관 앞에서 당당하게 피력하다가 처형되었다. 작가는 문서를 주의 깊게 검토하여 이러한 자연 발생적 우주관을 메노키오가 독서를 통해 스스로 인식했다는 점과 그의 존재는 민중 문화가 수동적으로 지배 문화를 답습한다는 종래의 관념을 뒤집는 사례라는 점을 밝혀냈다.


그런데 기존 역사학의 시각에서 볼 때 『치즈와 구더기』와 같이 개인에게 벌어진 일회성을 띠는 사건의 기록이 어떻게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는 신문화사가인 에도와르도 그렌디의 ‘정상적 예외’란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메노키오의 경우와 같이 지배층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된 예외적인 사람은 지배층에 대항하는 피지배층의 문화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이 정상적인 역사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피지배층의 사회적 현실을 왜곡한다. 때문에 피지배층에 대한 삶의 기록은 예외적이고 양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피지배층의 삶과 생각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해주므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문화사는 평범한 인물들의 개인적인 역사를 복원하고, 그들로 대변되는 민중의 삶을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연구하여 역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