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감각과 더불어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사고는 감각적으로 받아들인 특수한 것들을 일반화하고 그것들의 본질적인 연관과 구조를 해명함으로써 사물이나 사태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 작용은 과연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사물은 우리의 의식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지닌 속성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이러한 사물을 사고는 어떻게 관념적으로 모사(模寫)하는가? 관찰 행위를 통해 경험적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의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철수가 어떤 사물을 이모저모 살펴본 후 그것이 육면체라 판단한다고 하자. 그는 특정 시점 t1에서 그것의 특정 속성을 관찰한 자료 d1을 획득하고, 특정 시점 t2에서 그것의 또 다른 속성을 관찰한 자료 d2를 더해 가는 방식으로 관찰을 계속 진행한다. 그래서 그는 최종 판단 시점 tN에서 그때까지 그 사물의 모든 속성을 관찰하여 얻은 자료들, 즉 d1부터 dN까지를 토대로 ‘이것은 육면체이다.’라고 판단한다. 철수의 관찰 과정을 도식화하면 그림과 같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을 경우, 일반적으로 그러한 지식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획득한 자료들을 토대로 한다. 그러한 자료들은 관찰이 진행되면서 각각 특정 시점에서 사물의 속성들로부터 추상된 것들, 즉 의식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관념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들은 시간의 제약 속에 있지 않으므로 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최종 판단 시점에서는 실제로 그 이전까지의 사물의 모든 속성들이 이미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성들의 관념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우리의 사고는 바로 그러한 관념들을 종합하여 지식을 구성하게 된다. 


이로부터 사고가 사물을 관념적으로 모사할 때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지 알 수 있다. 최종 판단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료들은 어디까지나 최종 판단 시점 이전에 획득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과거의 속성들로부터 얻은 것이기에 최종 판단 시점의 사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것들이 최종 판단의 자료로 유효하려면 t1에서 tN까지 사물의 속성들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사고는 시공 속에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추상 작용을 통해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고정시킴으로써 지식을 부분적이고 일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 ‘경험적 지식 형성 과정에서의 사고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