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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당(唐) 태종이 방현령에게 이르기를 “선대(先代)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을 임금에게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니, 방현령이 대답하기를 “사관은 거짓으로 칭찬하지 않으며 나쁜 점을 숨기지 않으니, 임금이 이를 보면 반드시 노하게 될 것이므로 감히 임금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나 태종은 방현령에게 명하여 순서대로 편찬하여 올리게 했습니다. 방현령은 선대의 실록을 편찬하여 올렸지만, 말에 은근히 숨긴 것이 많았습니다. 어질고 슬기로웠던 태종으로서는 마땅히 바른대로 쓰여 있더라도 싫어할 점이 없었을 것인데, 방현령 같은 일세의 현명한 재상도 오히려 사실을 숨기고 피하여 감히 바른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혹시 태종에게 ㉠미치지도 못하는 후세의 군주가 자기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면, 아첨하는 신하가 어찌 방현령처럼 사실을 숨기고 피하는 것에 그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하시는 일마다 삼대(三代)*를 본받으시면서도, 근래에 특별히 명령을 내려서 지금 이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하시니, 저희들이 명령을 듣고는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당 태종도 그 시대의 역사를 보고 후세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태종이 덕망을 잃은 일이니 어찌 전하께서 마땅히 본받을 일이겠습니까?

 

을해년에 전하께서 이를 열람하고자 하셨다가 그 명을 거두셨으니, 한 시대의 법을 세움이 엄격하셨고 만세의 공론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이러한 명령이 있게 되니, 저희들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옳고 그름을 보고서 교훈으로 삼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거짓인지 참인지를 살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미진하게 기록되었는지 조사해 그것을 빠짐없이 쓰도록 하시려는 것입니까?

 

(중략)

 

삼가 생각하옵건대, 창업한 군주는 자손들의 모범입니다. 전하께서 지금 이 시대의 역사를 열람하시면 대를 이은 임금이 이를 구실로 삼아 반드시, “우리 아버님께서 하신 일이며 우리 할아버님께서 하신 일이라.” 하면서 다시 서로 이어받아 당연한 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사관이 감히 사실대로 기록하는 붓을 잡겠습니까? 사관이 사실대로 기록하는 필법이 없어져 아름다운 일과 나쁜 일을 보여서 권장하고 경계하는 뜻이 어둡게 된다면, 한 시대의 임금과 신하가 무엇을 꺼리고 두려워해서 자신을 반성하겠습니까? 오늘날 역사를 열람하는 일은 자손들에게 좋은 계책을 전해 주는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 『태조실록』 -

 

* 삼대: 고대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