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下士)*는 오곡을 보면 중국에도 있는지를 묻고, 중사(中士)*는 중국 문장이 우리 나라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상사(上士)*는 중국에는 이학(理學)이 없다 한다. 과연 그러하다면 중국에는 배울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큰 천하에 무엇인들 없겠는가? 내가 지나가 본 곳은 중국의 한 모퉁이인 유주(幽州), 연주(燕州)이고, 만난 사람도 문인 몇 사람일 뿐이니 도(道)를 물려받은 큰 선비는 실상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사람이 없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천하의 서적을 다 읽지 못했고 천하의 지역을 두루 돌아보지 못한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는 뛰어난 학자들과 걸출한 문인들이 있는데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볼 것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얼 믿고 그러는지 알 수 없다.


대저 서적에 기재된 것은 그 범위가 대단히 넓고 의미가 무궁하다. 그런 까닭에 중국 서적을 읽지 않는 자는 스스로 금을 긋는 것이고, 중국을 다 오랑캐라 하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중국에 비록 육상산이나 왕양명 같은 사람들의 학설이 있다고 해도 주자학의 적통(嫡統)은 제대로 남아 있다. 


우리 나라는 사람마다 주자의 학설을 말할 뿐이며 나라 안에 이단이 없으므로 사대부는 감히 육상산이나 왕양명의 학설을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어찌 도가 하나에서 나와서 그런 것이겠는가? 과거(科擧)로 몰아대고 풍기(風氣)로 구속하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몸이 편안하지 않고 그 자손마저 보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이 중국의 큰 규모와 같게 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무릇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좋은 기예를 다 발휘해도 중국의 물건 하나에 불과할 터이니 서로 비교하려는 것은 이미 자신을 알지 못함이 심한 자이다. 


내가 연경(燕京)에서 돌아오니 국내 사람들이 잇달아 와서 중국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면서,

“그대는 중국 비단을 못 보았나? 꽃과 새, 용 따위의 무늬가 번쩍번쩍하여 살아 있는 듯하며, 가까이 보면 기뻐하는 듯, 슬퍼하는 듯, 모습이 금세 달라진다. 그것을 보는 자는 다 직조 기술이 과연 여기까지 이를 줄은 몰랐다 하는바, 우리 나라의 면포가 날과 씨만으로 짜여 있는 것과 어떠한가? 중국에는 어떤 물건이든지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말은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며, 집은 금빛과 채색 단장으로 꾸몄고, 통행하는 것은 수레이고, 냄새는 향기로운 냄새뿐이다. 그 도읍, 성곽, 음악의 번화함이며, 무지개다리, 푸른 숲 속에 은은하게 오가는 풍경은 완연히 그림과 같다. 부인네 머리 모습과 긴 저고리는 모두 옛날 제도 그대로이며 멀리서 바라보면 몸매가 날씬하여 우리 나라 부인네의 짧은 저고리와 폭넓은 치마가 아직도 몽고 제도를 이어받은 것과 같지 않다.”

하였더니 모두 허황하게 여겨 믿지 않았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아주 다르다는 듯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돌아가면서, “호국(胡國)을 우단(右袒)**한다.”라는 것이었다.


아아, 나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모두가 장차 이 유도(儒道)를 밝히고 이 백성을 다스릴 사람들인데 그 고루함이 이와 같으니 오늘날 우리 나라 풍속이 진흥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자는 “의리를 아는 사람이 많기를 원할 뿐이다.” 하였는데, 그러므로 나도 이에 대해서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 박제가, 북학의 -


*하사․중사․상사:선비를 상․중․하로 나누어 표현한 것.

**우단:한쪽 편을 듦.


―――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2년).